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불교문화대학원 교수풍수지리학 박사 최근 많은 시민들이 풍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2016년 1월부터 2020년 말까지 약 5년간에 걸쳐 “재미있는 풍수이야기”를 연재 하였는바 독자들의 재요청에 의하여 또다시 풍수지리 전문가 양삼열(楊三烈)교수의 글을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올바로 정립된 풍수학문의 전달과 풍수인식에 대한 잘못된 사고 등 풍수전반에 관한 유익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함으로서 애독자 여러분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엄미
최병식 편집국장 “국민들 먹고사는 데만 신경 쓰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신조다. 그는 취임 이후 수차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고, 세일즈 외교를 펼친다. 지난 2월에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굵은 글씨로 적힌 새 명함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게시한 적도 있다. 밝게 웃는 사진과 함께 “한국 시장은 열려있고 제 집무실도 열려있습니다”라는 글귀도 있다.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 때마다 자신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소개하며,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겠다. 국무위원들 모두 이 나라의 영업사원이라는 각오로 뛰
조충래전원생활체험학교장본보 논설주간 74. 聞閒用上韻懷草史(문한용상운회초사) 시를 듣고 초사가 생각나서 山聾水啞月明時(산롱수아월명시) 散步從容1)不覺遲(산보종용불각지) 襟懷草野2)難求玉(금회초야난구옥) 世事仙翁滿布碁(세사선옹만포기) 如錦霜楓粧洞口3)(여금상풍장동구) 暮江夕霧染山眉(모강석무염산미) 傍人莫謂無心作(방인막위무심작)草史來筵一笑期(초사래연일소기) 산은 귀먹고 물소리도 말 없는 달 밝은 때조용히 산보하다 늦는 줄도 몰랐네.가슴 속에 초야를 품었으니 옥(玉)을 구하긴 어려워세상일은 선옹(仙翁)의 바둑판에 채워두었네.비단 같은 서
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명석(名釋)목암선사(牧庵禪師) 청허 휴정선사의 5세 법손(法孫). 이름은 선정. 나이 15세에 함우 의영선사를 스승으로 삼아 득도(得度)102)하고, 뒤에 수교(修敎) 입선(入禪)하여 일생을 정(靜) 균(均 )혜(慧)를 익혔다. 영종조 병자년 3월 확연(確然)히 견성(見性)103)하여 국일도 대선사의 법계행(法階行)을 삼가 공손히 받아(拜受), 선종과 교종 양종(兩宗)의 정사(政事)하여 남은 평생을 설법하고 중생을 구제하였다. 입적(入寂)후에 사리탑(舍利塔)이 있다도봉대사(道峰大師) 이름은 유문일
오는 19일부터 제21회 영천한약축제가 한의마을 일원에서 21일까지 열린다. 모든 지자체가 앞다투어 여는 축제가 그렇지만 봄, 가을에 많이 몰려 있다. 따라서 다른 지자체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까지 소홀함이 없어야 하고, 전 시민적 의지와 열망을 모아 축제를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 특히 축제를 주관하는 관계자들의 역할은 축제의 흐름을 이끄는 핏줄과 같아서 한치의 착오도 없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어떤 축제를 봐도 그 안에는 남의 눈에 크게 띄지 않으면서 축제장 뒤에서 동분서주하며 축제를 묵묵히 성공적으로 이끄는 숨은
심 지 훈(경북 김천, 1979.7.8~) 가장 엄중한 사실은 외면한 채, 무지인 채로 ‘묻지마 공부’에 달려들고 있다. 저 죽을지 모르고 불구덩이로 달려드는 꼴이다. 근데 이러면 부모인 저만 죽나 자녀도 같이 죽는다. 결국 비극이다. 거개가 대학까지 나온 1970년대생 부모들이 이렇게나 무지할 수가 있는가.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놀랍다.다섯 살 라온이가 20년 후 먹고사는 세상은 무척 어렵다.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된다.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한들 번 돈의 절반 이상은 세금과 노인 부양비로 내야 한다. 그때가
한 관 식작가 육교(8)“신상이 공개될 우려 때문에 확인되지 않는 분에게, 함부로 성함이나 전화번호를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직접 오셔서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주십시오.”경찰관 말에 의기소침해져 통화를 끝냈습니다. 아무튼 아내의 정의감 덕분에 루트 바 가운데 차 지붕이 찌그린 채로 다시 일상에 젖어 들어갔습니다. 미경이라는 궁금증도 많이 옅어진 어느 봄날, 초여름처럼 더웠던 퇴근 시간에 시원한 캔 맥주를 떠올렸습니다. 묶음으로 된 캔을 사기위해 집근처 마트에 들렸습니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주차장 벤치에 앉아 졸리기도 했지만 무심하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불교문화대학원 교수풍수지리학 박사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산 11번지에 가면 이조 말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묘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원군이라면 누구나 흥선대원군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대원군이란 호칭은 왕이 된 아들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로 선왕의 후손이 없어 방계가족 중에서 누군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 왕의 아버지에게 붙여진 호칭이다. 조선조에서 대원군은 모두 4명으로 그들의 묘소는 전부 경기도에 있다.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과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묘는 남양주에 있고 인조의 아버지 정
원감 해공대한불교 조계종 보현산 호국 충효사 회주사회복지법인 충효자비원 이사장 (지난호에 이어) 정말로 스스로 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까? 그 복도 이미 운명적으로 타고 난 것이 아닐까요? 인도의 파사닉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선광공주라고 하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왕은 그 딸을 그야말로 금지옥엽으로 아끼고 귀여워 했습니다. 어느 날 왕이 공주에게 말했습니다.“얘야! 너는 왕의 가문에 태어난 덕에 능라주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으니 마땅히 부왕의 음덕에 감사해야 한다.
최병식 편집국장 어느 초등학교 총동문회 임원 회의가 있던 날, 꼭 와야 할 이사 한 사람이 참석하지 않았다. 회장이 그 사람과 친한 총무에게 왜 빠졌는지 물었다. 그러자 총무가 “등산 갔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회장은 “산 오르다 미끄러져 발목이나 부러져 버려라”라고 했다.말을 하고난 회장은 후회했다. 왜냐하면 등산 간 사람은 성격이 다혈질이고, 총무와 친해 말이 그대로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회장은 밤 늦게 산에 갔다 온 이사에게 내일 오후에 찾아뵙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 밤 회장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그
조충래전원생활체험학교장본보 논설주간 며칠 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았다. 연혁을 보니 2002년 안동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발기되고 나서 2007년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개관되었으며, 이 안동독립기념관이 2017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거듭났다. 그런 탓인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에는 산남의진이 없다. 설립목적은 “경북 독립운동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함으로써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켜온 독립 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 및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증직(贈職)한국주(韓國柱) 청주인. 공조참의 자량의 뒤. 숙종조 예조참의로 추증. 가선산성에 곡식을 돌려 줄 때 고을이 그 폐해를 입자, 아홉 번이나 대궐에 호소하여 이에 임금께서 들으시고 영원히 백성들의 병폐를 밝힘으로써 향인들이 주철(鑄鐵)로 비석을 만들어 세워 그를 기렸다원진의(元進議) 원주인. 관란 호의 뒤. 경종조 통훈 군자감정으로 추증김금룡(金錦龍) 경주인. 부사 귀일의 뒤. 손자인 태우의 수귀(壽貴)로 병조참의로 추증유상운(柳尙雲) 문화인. 충정공 량의 뒤. 군자감 정으로 추증김연갑(金
심 지 훈(경북 김천, 1979.7.8~)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 라온이는 특이하게도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공원의 놀이기구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즐기는 운동기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어제 오후 아내의 지령(!)에 따라 라온이를 데리고 공원 놀이터로 갔는데, 다섯 살 라온이가 어느새 아빠 손을 빌리지 않고도 운동기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고 적이 놀랐다. 농구공도 처음으로 갖고 놀았는데, 또래에 비해 키가 큰 라온이는 패스도 곧잘 했다. ‘이 녀석 어느새 이렇게 자랐대.’육
한 관 식작가육교(7)난간을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여자에게 모든 시선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육교로 올라가 손을 잡아줄 시간도 빠듯했고 무엇보다 건장한 체구의 젊은 사람도 하필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탄식과 애통해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 속에 5인승 하이브리드가 버티고 섰습니다. 차가 망가지는 것은 뒷전이고, 높이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아내가 했습니다. 무조건 반사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는 아내의 정의감은 급기야 나를 타박했습니다. “떨어지면 혹시나 삐끗하여 육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더 다칠지 모르니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불교문화대학원 교수풍수지리학 박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에 가면 이조 말 정권의 실세 흥선대원군의 묘소가 있다. 이 묘는 원래 1898년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으나 1906년 고종의 황명으로 경기도 파주시 운천면 대덕리로 옮겼다가 1966년 4월 다시 지금의 남양주로 이장해왔다. 경기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된 이 묘역을 흥원(興園)이라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는 무덤이라도 그 주인의 지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하여 불렀다. 능과 원은 모두 왕족의 무덤이지
원감 해공대한불교 조계종 보현산 호국 충효사 회주사회복지법인 충효자비원 이사장 (지난호에 이어) 복의 과보는 그 사람 자신이 심은 인(因)에 의해 좌우되며, 복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복을 조금이라도 심어 놓으면 반드시 거두어 들일 날이 옵니다. 결코 조금도 헛되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따라서 지금 농사를 잘 지었다고 복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수입이 줄어들었다고 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많건 적건 다시 복을 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심은 복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옛날 인도에 어질고 지혜로우며 아
최병식 편집국장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는 휴대폰을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며 생활의 일부가 된 현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말한다. 휴대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니 막강 파워에 포섭된 듯한 느낌이다. 이제 휴대폰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고 아카이빙하는 자아 대체수단으로 자리 잡았기에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됐다. 휴대폰의 대중화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의 미학을 잃고, 진정한 의사소통의 핵심
조충래전원생활체험학교장본보 논설주간 72. 秋夜逢金兄草史1)(추야봉김형초사) 가을 밤에 김형 초사를 만나다風凉露白月明時(풍량노백월명시) 邂逅相逢就睡遲(해후상봉취수지) 經歷人心深淺水(경력인심심천수) 紛2)世事死生碁(분운세사사생기) 窓昏績火開宵目(창혼적화개소목) 酒熟村翁敍氣3)眉(주숙촌옹서기미)從古林間多慷慨(종고임간다강개) 長歌短4)抱前期5)(장가단공포전기) 바람은 서늘하고 이슬은 하얗게 내려 달빛 밝을 때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만나니 잠자리가 더뎌진다.인심은 깊고 얕은 물을 지나는 것 같고어지러운 세상사는 죽고 사는 장기판이로구나.창이
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증직(贈職)전희상(全希祥) 낙암 언의 아들. 손자인 삼달의 귀함으로 형조참의오 추증됨이석필(李碩弼) 성주인. 주부 돈례의 아들. 호는 징산. 예원의보로 추증전몽룡(全夢龍) 참의로 추증된 희상의 아들. 단아하고 문학(文學)이 있었다. 지산 조호익과 더불어 도의의 교제를 하였다. 아들인 삼달의 귀함으로 호조참판으로 추증됨유식(柳湜) 문화인. 명종조 좌부승지로 추증 권덕신(權德臣) 구의헌 열의 증손. 착함을 즐기고 덕을 좋아함으로 알려졌고, 아들인 응수의 귀함으로 우찬성으로 추증되고 능라군으로 봉해짐정
심 지 훈(경북 김천, 1979.7.8~) 울 엄마는 이맘쯤 외할매 묘소 잡초를 뽑고 쑥을 뜯어와 다듬어서는 하룻밤 불린 쌀을 한 보자기에 싸 머리에 이고 시내 방앗간으로 간다. 가서 엄마처럼 쑥떡 하러 나온 다른 동네 할매들이랑 방앗간 평상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울 엄마의 대화는 수다일 리가 없는 것이 항시 화자 아닌 청자이기 때문이다.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몰캉몰캉한 쑥떡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방앗간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엄마는 성정상 직접 제조 과정을 봐야만이 안도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미리 가늠해 본 쑥과 쌀의 비율이 적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