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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최초의 육상 승리 ‘영천성 수복전투’

잊혀진 역사 재조명 위해 ‘영천성 수복대첩 기념사업회’ 발족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9.01.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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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영천 고을민들이 중심이 되어 농기구까지 들고 치열한 전투 끝에 성을 되찾으며 내륙에서 거둔 첫 승리로 기록된 영천성 수복전투 승전기념사업이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임진왜란 당시 육군 승리의 결정적 토대를 마련한 ‘영천성 수복대첩’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한 ‘임란 영천성 수복대첩 기념사업회’가 17일 영천시교육문화센터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이 들어갔다.

이날 창립대회에 앞서 임란 영천성수복대첩 기념사업회는 현지에서 이사회를 열고 정규정 이사장을 선출하는 등 조직을 완료했다.

‘잊혀진 역사 임란 영천성 수복대첩 기념사업회 창립대회’에는 최기문 영천시장을 비롯 시‧도의원 등 350여명이 참석해 시민들의 관심을 대변했다.

임란 영천성수복대첩 기념사업회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점령당했던 국가 위기에서 영천 고을민들이 중심이 되어 창의정용군(의병)을 조직하고 치열한 전투에 의해 회복한 승첩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경북연합의병부대 창의정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임진왜란 수복전 기념일에 관한 조례’가 영천시의회에서 지난해 12월 제정되어,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대첩’ 승전일인 1592년 7월 27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매년 9월 2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앞서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수복전투를 승리로 이끈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영천성수복전투를 기리는 기념일이 제정되면서 기념탑 건립 등을 위한 움직임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추진됐다.

이규화 집행위원장은 이날 사업계획 발표를 통해 “이 사건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와 함께 영천성 대첩을 주제로 하는 무용 등 공연예술과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 설치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현재 이름만 남아있는 남문통 등 성벽의 일부라도 복원해 과거와 현재를 시공간적으로 연결하는 작업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천성 수복전투는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열흘후인 4월 24일 영천성이 함락되자, 그해 5월초 권응수 장군을 비롯한 정세아, 정대임 등 민간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7월 27일 성을 탈환한 임진왜란 최초의 육상승리전투이다.

경북연합의병부대인 ‘창의정용군’을 결성해 승리로 이끌어낸 대규모 육지전으로 그 의의는 남겨진 역사 속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항복은 ‘백사별집’에서 “이순신의 명랑해전과 영천성 수복전투가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영천성 수복대첩의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청주시는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이 내륙에서 거둔 첫승리로 기록됐다며 매년 이를 기념해 청주읍성 큰잔치를 열고 있다. 하지만 청주성 탈환은 영천수복전투보다 4일 뒤인 1592년 8월 1로 기록되어 있다.

임란 영천성수복대첩 기념사업회 정규정 이사장은 “민족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임란에서 그 흐름을 바꾼 영천성수복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기념사업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며 “소중한 역사가 잘 기념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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