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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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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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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관 식 (사)한국문인협회 영천지부장
 

계절의 끝자락에서 당신을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그렇더라도 당신에게 용서를 구해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되었을 때, 불안하고 목마름에 꼭이나 공항장애를 앓듯 초조해집니다. 당신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이기주의일지 모르나 당신과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싶네요. 그러면 이 증세가 나아질 것 같은 기대감에서입니다. 여섯 살 적은 나를 만나 받아들이기까지 운명적인 틀 안에서 얼마나 망설였나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정지을 때까지 당신은 자신과 수많은 전투를 벌였겠죠. 그런 행로에 찬 물을 끼얹은 사람도 갈라서기를 재촉한 사람도 나겠죠. 그때는 으르렁거리는 것이 최선처럼 느껴졌는데, 거미줄 같은 일상에서 해방되니 당신도 보이고 나도 보이네요. 안면도를 배회해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없네요. 조크에 웃어주길.

일주일 숙박비를 지불한 모텔로 들어옵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머물러야만 이곳의 동향을 파악할 것 같은 나만의 이론에서 연유된 수치입니다. 창가에는 바닷바람이 얇게 묻어납니다. 담홍색 반점 커튼 사이로 소금기가 스물 스물 넘어옵니다.

지금 밤바다는 인생을 벗어나 전혀 다른 사람의 세계로 안내하겠지요. 밤바다에 서면 울림 또한 만만찮게 전혀 예상 못한 곳으로 이끌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의 고삐를 쥐고, 밤바다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겠지요. 감정과 분위기를 잡는 것은 밤바다이기에. 바다로 나가기가 두렵습니다. 모텔 문만 열면 곧 바다인데 나는 웅크려듭니다. 만약 여행의 여흥도 채가시지 않은 내가 밤바다라는 블랙홀 앞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적절하게 구사할 자신이 없습니다. 인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서 506호 모텔 방에 수감되어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심함에, 당신은 고민에 빠졌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당신은 도움이 되길 원했죠. 날카롭게 받아들이던 내가, 당신이 내게 전하고자하던 사랑과 화합을 끝내 뿌리치던 그 모습에서 달라지길 지금은 소망합니다. 상투적인 말투, 상투적인 몸짓에서 상처 받았을 당신, 이제는 당신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도벽이나 역마살중 하나를 택한다면 당신은 역마살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떠도는 건지 모릅니다.

첫날밤을 함께하고, 차마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는 고백에 당신은 가슴으로 나를 안아주었지요. 36.5도의 체온과 스펀지처럼 빨아 당기는 심장박동소리, 당신 체취, 몰캉몰캉한 알맞은 탄력.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당신 가슴이었지요. 나는 그 안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요.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부지런히 들려옵니다. 뱃사람의 노랫소리도 어둠을 탑니다. 낯선 땅의 새벽은 언제나 비틀거립니다. 눈을 닫으면 귀가 열려있습니다. 변명처럼 살아온 내가 웅크려듭니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싶네요. 그러면 안녕, 다음에 소식전하겠습니다. 당신의 남편

남편이 보내준 메일을 읽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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