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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2)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06.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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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관 식 (사)한국문인협회 영천지부장
 

출항을 위해 돛을 올리고 어떠한 명분을 앞세워, 짐을 이제 내려놓고 싶습니다. 햇살이 얇아지자 바닷가는 먼 곳까지 갯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운기는 입구에서 나룻배처럼 멈췄습니다. 어깨를 밀착하며 덜컹거렸던, 한 무리의 아낙네가 갯벌로 나가기 위해 짐칸에서 툭툭 떨어집니다. 유월의 오후는 바다와 맞서기위해 팽팽합니다. 하늘과 맞닿으면 따가운 햇살도 잠시 갈매기가 포물선으로 사라집니다. 풍경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네 시입니다. 한 아낙네는 긴 장화의 끈을 바짝 조여 맵니다. 그것은 앞으로 갯벌 안에서 힘겨운 노동이 있다는 예고겠지요. 엉덩이엔 저마다 널빤지가 묶어져 있습니다.

경운기 기사가 시동을 끕니다. 진격 명령의 북소리 같았는데 시동을 끈 갯벌의 정적은 더욱 채근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낙네는 자신의 좌표를 알고 있습니다. 출발점은 비슷하지만 점점 서로의 간격을 벌려가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널빤지가 아낙네의 엉덩이에서 껌딱지처럼 붙어있습니다. 갯벌의 차지고 습한 기운이 입구까지 느껴집니다. 기사는 경운기 기름통 마개를 열어 확인합니다. 나도 괜히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마개를 닫으며 뭔가 구시렁거리는 것을 봐서 기름이 바닥을 닿는가봅니다.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꺼내고 또 구시렁대며 우지직 구겨 아무렇게나 던집니다. 기사는 습관처럼 줄어들고 소멸되는 것에 민감한 가 봅니다. 구시렁거리면서 자신의 존재와 고립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묶어 보상받고 싶은 본능이 아닐까요. 어쩌면 나를 의식해서 접근금지의 경계선을 만들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사와 조금 거리를 두려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미 많은 관광객이 자리를 잡고 방파제 근처에서 갯벌 구경에 여념이 없습니다.

경운기는 한 두 대가 아니었습니다. 갯벌 안에 있는 아낙네도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일찍 자루를 채운 아낙네가 경운기 쪽으로 다가오자 관광객이 우르르 몰려와 싱싱한 해산물을 흥정했습니다. 빙긋, 입가에 웃음을 지었습니다. 단지 그 웃음의 의미는 나도 모릅니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 탓이겠죠.
바닷가 땅거미는 수평적 이동을 합니다. 수평선 아득한 곳에서 몰려온 파도와 파도를 갉아먹는 모래와 낮은 비행을 하는 갈매기를 정점으로 분홍빛 그늘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서 종아리에 묻어나는 모래알을 털며 바닷가 주위에 드러난 흔적을 봅니다. 한때 바다였을 작은 언덕에는 알알이 박힌 조개의 무덤이 보입니다. 바다 속 이야기를 알고 있겠죠.

돌아갈 바다는 가까이에서 출렁이는데 더 이상 바닷물은 닿지 않고 조개들은 말라갑니다. 꿈도 까맣게 타 들어갑니다. 누구도 조개의 꿈엔 무심했겠죠.

지금 일몰을 맞을 시간입니다. 갯벌에서 아낙네들이 온통 진흙탕으로 귀가를 서두릅니다. 일몰의 시간엔 썰물이 밀려와 반쯤 갯벌이 잠긴다지요.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순간을 담기위해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캄캄한 어둠을 부르는 주문처럼 잿빛 갯벌 사이사이로 붉은 기운이 감돌고, 사람들의 탄성과 노을의 울음과 시시각각 쏟아져 내리는 존재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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