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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안동 하회마을

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불교문화대학원 교수풍수지리학 박사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3.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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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하회마을은 물이 마을을 휘감아 돈다고 하여 하회(河回)마을이라 불렀다. 강 건너 부용대에 올라보면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가 있는데, 물길은 S字 모양의 태극문양과 같고 풍수형국으론 행주형과 더불어 연화부수형임을 한 눈에 직시할 수 있다. 풍수원전 ‘금낭경’에 이르기를 “기승풍즉산계수즉지(氣乘風則散界水則止)”라 하여 지상의 기운들은 바람을 타면 흩어지지만 땅속을 흐르는 지기는 물을 만나면 즉시 멈춘다 하였다. 그러므로 마을 전체가 물로 감싸진 이 마을은 생기 가득한 명당길지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라 하였던가 완전한 땅은 없는 법, 마을 서쪽의 원지산과 북편의 부용대 사이가 낮아 겨울이면 차가운 북서풍의 피해가 예상된다. 마을에서는 이곳의 허함을 비보(裨補)하기 위해 강가에 만송정이란 소나무 숲을 조성하여 방풍림의 역할과 함께 강가에서 날라 오는 모래를 막아주는 방사림의 역할까지 하게 하였다.  
하회마을은 태백산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려온 용맥의 한 줄기가 마을 뒤에 봉우리를 일으키며 주산이 되었고 이 산이 꽃봉오리처럼 솟아 올랐다하여 화산(花山)이라 부른다. 여기서 산맥이 있는 듯 없는 듯 낮게 뻗어 내려와 마을의 중심 충효당 뒤편까지 내려왔다. 산 입구 입간판에는 마을의 형국이 배가 나아가는 형국인 행주형(行舟形)과 더불어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모습인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그리고 산과 물의 흐름이 태극모양인 풍수적 길지라 설명하고 있다. 풍수서 ‘조선의 풍수’에서는 행주형의 땅을 읍기로 정하면 이 읍의 발달과 번창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였으나 마을에 우물을 파면 배가 침몰한다 하여 우물은 금기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함부로 우물을 파지 않았으며 과거에는 강물을 길러 먹었고 현재 마을의 공동 우물터는 일제들이 의도적으로 판 우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화부수형은 연이 뿌리를 물속 깊이 내려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식물이므로 자손이 많이 나고 걸출한 인재를 배출한다고 하였다. 그런 연유로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서애 유성룡과 그의 형 겸암 유운용을 비롯한 여러 선비고관들이 배출되었다. 마을은 삼면이 물길로 휘감아져 있고 마을출입구는 하회마을로 넘어 들어오는 큰 고개 길이다. 이런 막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과거 십승지(十勝地)와 같이 국가의 대재난이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심지어 6.25사변까지도 별 피해가 없는 안전한 마을이었다고 전한다. 
하회마을은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있는 역사 민속마을이다. 현재 마을의 대부분 고택들이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있고 풍산류씨의 대종가인 양진당을 보면 이 마을이 과거 그들의 집성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애 종택인 충효당 내 영모각에는 류성룡 선생의 수많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고 서원과 각종 정사(精舍) 등에서도 양반의 선비정신을 느껴볼 수 있다. 이 마을은 2010년 8월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적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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