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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2.28 16:34
  • 수정 2024.02.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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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17)
목요일은 수강생을 위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작업실 가운데를 널찍하게 치우고 수강생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여 누드모델 뎃생 수업을 했다. 석고 뎃생에서 한 단계 넘어간 누드모델 뎃생 수업은 수강료도 올랐지만 그만큼 저마다 진지해져 있었다. 남의 벗은 몸은 동성적이라 하더라도 시선을 끌 충분한 매력은 있었다. 수업 시작 전에 공간 확보와 수업이 끝난 뒤 원위치가 내 몫이었다. 수업시간에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구석진 곳에 가림막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있어야 했다. 
몇 번 호기심에 커튼을 살짝 걷고 누드모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이젠 그마저도 신이나지 않았다. 그만큼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수강생에게 들려주는 표현봉조각가의 강의만 간혹 채집하곤 했다. 커튼을 뚫고 들려오는 표현봉의 목소리는 칠순에도 힘이 있었다. 
“여자 누드모델이 너무 추워 보여 랑제리는 두르고 있는 머플러를 가슴과 성기부분에 덮어주었지. 그러자 아무렇지 않게 뎃생을 하던 학생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흥분하여, 뺨이 홍조를 띄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지. 그에 힌트를 얻은 랑제리는 그 사업을 하여 지금도 속옷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어. 어쩌면 개방하고 드러낼수록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도 모델에게 속옷을 입혀 야한 생각을 해볼까?”
“아뇨!”
수강생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좋아,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선생님은 흡족해.” 
관심을 끄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누드모델의 얼굴을 괜히 보고 싶었다. 한쪽 눈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커튼 틈만 약간 벌려서 수업을 참관했다. 수강생들의 뒷모습을 지나 무대저쪽에 누드모델이 포즈를 잡은 모습에 시선이 닿았다. 순간 수많은 벌에 쏘인 듯 놀라고 말았다. 몇 번 조각상 모델로 옷을 입고 원통형무대에 서던 음악다방 마담이었다. 기어코 누드모델로 세운 표현봉의 저의가 무엇일까. 어쩌면 밋밋한 삶에 활력소가 되기 위한 선택을 스스로 자원한건 아닐까.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커튼의 틈새를 더 넓게 벌렸다. 들키지 않으려고 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은 은근히 급해졌다. 마담을 볼 때마다 미끈한 몸매에 이끌려 항상 옷 속의 속살이 궁금하긴 했었다. 커피향으로 감싼 속살을 만질 수는 없어도 한번쯤은 볼 수 있는 날을 은근히 손꼽아 온 것 같았다. 표현봉은 늘 최면을 걸 듯 마담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단해. 그리고 완벽해. 포즈 하나하나가 버릴게 없어. 어쩜 이렇게 빛날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죄다 살아있어. 이정도면 가까운 시일 내에 결심을 해도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걸.”
그 결심이, 이 결심인줄 이제야 깨달은 나는 뚫어지도록 마담을 훔쳐보았다. 표현봉의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알맞게 쭉 떨어지면서 군더더기 없는 여자의 둥근 집합체들은, 이제껏 봤던 누드모델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 몸속에서 밀어 올리는 욕정이기 전에 하나의 경외감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한 찬사였고 숭배감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가벼움으로 접근하지 못할 곳에 마담을 내내 올려두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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