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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마흔을 넘는 지혜(1)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2.21 11:26
  • 수정 2024.02.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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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 꼭 한번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 며칠 전 책 제목에 꽂혀 구입했다. 어제 이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여러분과 통화를 했다. 양기(陽氣)를 너무 뿜어낸 탓인지 저녁답에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집사람이 삼겹살을 구워줬다. 다행히 현기증은 금세 사라졌지만 평소보다 피곤기는 더했다.
이 책은 출간(2013년) 당시 KT에 22년째 근무 중인 채현수라는 사람이 45세에 쓴 책이다. 10년이 흘렀으니 그도 아마 ‘퇴직자’가 됐을 것이다. 
이 책은 마흔을 넘는 대한민국 직장 남성 혹은 가장의 삶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부정적으로 징징대며 묘사하고 있다. 때문에 88쪽까지는 기(氣)가 쫙쫙 빨린다. 초지일관 대한민국 40대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다는 논조를 보인다. 이쯤에서 덮어버릴까 하다가 책의 결론이 궁금해 부여잡고 있었다. 
지은이가 숱한 사례로 보여주는 40대에 맞닥뜨리는 엄혹한 현실을 읽노라면 구태여 이렇게나 미주알고주알 알알이 박을 일은 또 뭐냐 싶으면서도 정말 남일 같지 않다 싶었다. 
문득 대학 동문 김영민씨가 떠올랐다. 내 대학 동문이라 해봐야 영민씨를 포함해 달랑 2명이 있는데, 우리 셋 다 대학졸업 후 취업에 바로 성공했다. 소위 ‘지잡대’ 출신이어도 우리는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제때 취업에 성공했던 것이다.
영민씨는 4학년 여름 방학 때 파주에 있는 중견기업에 입사했고, 1년 후배인 동문 A씨는 대학 3학년 때 경찰시험에 합격해 울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대구의 신문사에 입사했다.
각자 자리를 잡고 회포를 풀 때면 대구로 모였다. 5년 뒤 내가 먼저 신문사를 그만두고 이어 A씨가 경찰을 그만두었다. 영민씨는 경력을 쌓아 LG로 이직했다. 
나와 A씨는 퇴직기념으로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남들 3박 4일 걷는 길을 우리는 야간산행까지 해가며 2박 3일 만에 주파했다. 밤늦게 산장에 도착하니, 어떤 분이 “만약 비라도 만났으면 당신네들은 죽었을 것”이라며 지리산에서 5월 야간산행은 금물(禁物)이라고 했다. 바로 엊그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뭘하고 살까 하는 답을 찾는 산행보다 머리를 비우는 산행을 했다. 살면서 그만큼 땀을 흘린 적이 있을까 싶게 걷고 또 걷자 정말 머리가 새하얗게 맑아졌다. 순백의 도화지랄까, 천고마비지절의 티 없이 맑은 하늘의 모습이랄까. 땀을 한없이 빼면 정신이 무지 맑아진다는 걸 그때 체험했다.
그때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했고, A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경찰은 다시 안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하던 일과 연관된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그런데 형사를 하던 친구가 사회에 나와 어떤 관련 일을 할 수 있을까. A씨는 1년 이것저것 시도하다 다시 노량진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행정직 공무원에 도전했다. 두 번 연속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더니 형이 있는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아르바이트 개념과 일본의 아르바이트 개념은 좀 달랐다. 일본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경우에 따라 직장인 봉급보다도 많았다. 그땐 도쿄올림픽을 앞둔 터라 일자리는 널렸다고 했다. 거기서 일본인 여자친구도 만나고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일본에서 사는 게 좋겠다고 했다. 비자는 일본인 여자친구와 결혼하면 해결될 것이라 했고, 실제 결혼을 추진했다.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 것 같았다. 
영민씨와 나는 졸지에 일본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혼은 이후 지지부진했다. 취업비자를 못 받아 그는 1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와서는 전혀 뜻밖에 선택을 했다. 어느 날 물류를 배달하는 큰 트럭을 샀다고 했다. 그 트럭에 짐을 싣고 배달해 주면 건당 얼마를 받는 일이라고 했다. 먹고 자는 일도 트럭에서 한다고 했다. 그러길 1년 남짓이 됐을까. A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실 A씨는 나보다는 영민씨와 우애가 돈독했다. 나는 늘 둘에게 ‘~씨’ 하며 존대했지만, 둘은 형동생하며 편하게 지냈다. 둘은 따로도 자주 만났다. 그랬던 영민씨와도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4~5년이다.
A씨는 고향이 내 처가와 같은 경주라 추석, 설 명절에 경주를 가면 늘 만나던 친구이기도 했다. 1년 후배인 데다 효자에 심성이 고왔던 친구가 돌연 연락을 끊었을 때는 무슨 큰일이 있거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인데 영민씨나 나나 안타까워할 뿐 더 이상 해 볼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 사이 영민씨는 LG DP 구미사업장에서 파주 본사로 옮겨갔다. 영민씨는 1년 반 전 LG를 퇴사하고 중견기업에 재입사했다. 대기업 과장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건 통화로 들어 짐작했지만, 퇴사할 정도로 사정이 안 좋은가 내심 생각하고 말았다.
-계속 
어제 오랜만에 한 통화해서 1년 반 전 사정을 이야기해 줘 알았다. 그는 그 사이 그 인생에서 엄청난 파고를 하나 넘었다. 아니, 아직도 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우리의 주 대화는 주로 A 씨의 소식이고, A 씨와 추억이었지만 어제는 영민 씨의 생활사였다. 

 <마흔다섯, 꼭 한번은 선택의 순간이 온다>에는 영민 씨의 사연이, A 씨의 사연이 아주 다양한 색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사례 속엔 나도 있다.

 마흔을 넘는 지혜가 우리 40대 모두에게는 공히 똑같이 필요한데, 우리 대다수에게는 그런 지혜가 딱 필요할 때는 없다. 시간이 지나 인생의 폭우도, 태풍도, 회오리도, 쓰나미도 지나간 뒤에야 ‘지금 생각해보면’하고 가로늦게 지혜가 서는 것이다. 

 나는 집사람에게 최근 ‘권지혜’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자기는 지혜가 부족해. 이름을 권지혜로 바꿔보는 게 어때?” “응. 나 그럼 권지혜라고 불러줘.” 농반진반이 담긴 별칭이지만 집사람도 영 놀림으로만 받지 않는 게 ‘용타(용하다)’고 생각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 읽어보니 100쪽을 넘기면서 읽을만하다 싶다. 독서력이 만만치 않은 저자가 엮어다가 피곤한 이야기 사이사이 놓아둔 인용구는 밑줄 치고 가슴에 새겨볼 만하다.

106쪽) 인디언들도 말을 내달리다가 어느 정도 거리를 달리면 잠시 멈춰 선다고 한다.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 하여 기다려주는 거라고 한다. 말을 달릴 때도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데 미친 듯이 인생을 질주해온 마흔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102쪽_ “여러분의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자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게 하라.”(스티브 잡스)
 
96쪽_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런데 우리는 닫힌 문을 바라보느라고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하곤 한다.”(헬렌 켈러)
장에 갈 필요가 없고 결혼을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과 똑같은 감정 곡선을 그린다. 중년의 우울이 
83쪽_ “유인원들은 융자를 받아 집을 사거나 직현대사회에서 비롯되는 괴로움 때문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내려온 특질임을 보여주는 증거다.”(영국 워릭 대학교 앤드류 오스왈드 교수)

73쪽_ “지금까지 철저하게 회사 중심으로 살아온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다면, 회사나 지위같이 자기 밖에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앞으로 계속 자신의 마음을 채워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물질은 없어도 된다. 회사에 의지하는 것이 마음을 채워놓지도 않는다. 결국 행복하게 사는 것은,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다.”(일본 작가 나가노 고지_자신을 위해 살겠다며 70세 정년의 교수직을 55세에 사직한 사람)

63쪽_ “40세가 되면 오장육부와 십이경맥이 모두 왕성하다가 정지하고, 피부가 무르고, 얼굴의 빛이 없어지며, 수염과 머리털이 희기 시작하고, 기혈은 보통 정도로 왕성하면서 변동하지 않기 때문에 앉기를 좋아한다. 또 40세까지는 어머니 젖힘으로 살다가 마흔부터는 스스로 제 몸을 추슬러야 한다.”<동의보감> 

48쪽_ “이미 7년마다 지식의 양은 두 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2030년이면 72일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34쪽_ “나이가 들수록 사물을 너무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너무 무겁게 살아왔다. 나이 든다는 건 무거운 짐을 가볍게 내려놓은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현명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적당함’을 하는 것이다. 목욕을 하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을 때를 생각해 보라.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찾아야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 인생의 적당한 온도를 찾아가는 것이다.”(<카사블랑카> 주연 험프리 보가트)

33쪽_ “사십대는 정지하는 듯 신비스러운 시기다.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드넓은 고원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로 시선을 던진다. 이것이 인생의 가을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영민 씨로부터 시작된 통화는 경북 의성 한옥촌 ‘태양마을’ 촌장 김동윤 선배님, 이제 늙었다는 게 느껴진다는 대구의 선진 스님, 재작년에 경향신문을 퇴직한 김경은 선배님, 경북대 대학원 시절 의형제를 맺은- 서울 사람 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혁장 형으로 이어졌다. 영남일보 그만두고 의형제 맺은 박천수 형님은 통화가 서로 어긋났다.

 오늘 아침엔 매일신문에서 조기퇴직하고 경북 안동에서 제2인생을 일구고 있는 서명수 선배님께 안부전화를 넣었다. 최근 폐렴으로 쓰러져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완쾌까지 2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마흔이 되면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고 하고, 계급장 떼고야 인생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도 비로소 그럭저럭 뭔가 보이긴 보이고, 계급장 떼야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는 말도 능히 이해가 된다. 

 [글밥] 독자 모두 평안하시길, 그전에 야무진 지혜를 체득하시길, 빈다.
/심보통 202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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