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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24 15:47
  • 수정 2024.01.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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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14)
곤충생태 공원의 대표적인 조형물로 잠자리동상이 자리 잡기위해 표현봉은 어느 때 보다 신경질적으로 날이 서있었다. 십분 이해하는 마음으로 내 몸도 바빠졌다. 설계도면에 명시한대로 머리와 몸통과 날개와 꼬리부품을 각자 따로 진열해두었다. 거기에 왼쪽부분과 오른쪽부분으로 나누어 헤매는 일없이 신속 정확한 작업공정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었다. 조각가는 못미더운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있었다. 용접팀이 들어왔을 때 작은 공정이라도 필히 자신에게 확인시켜달라고 다짐을 주는 모습에서, 잔망스럽다기보다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는 치밀함으로 읽혀졌다.
오래전부터 같이 작업해와서인지 표현봉의 웬만한 날선 반응도 용접팀은 마냥 싱글벙글거렸다. 저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손발이 잡음 없이 맞기까지, 수고비에 보너스를 아낌없이 주는 표현봉 스타일에 만족해있다는 증거였다. 육 미터 높이의 잠자리 동상이 용접자국이 그대로 드러난 채 우뚝 모습을 드러냈다. 용접팀이 빠지자 색조팀이 그 자리에 투입되었다. 이미 조각가가 요구한 색상을 주문받고 준비해온 색조팀의 손놀림은 빠르고 명쾌했다. 
페인트칠 초벌은 빈공간이 없도록 색상을 입히는 정도였고, 원하는 색상을 보려면 재벌로 신중하고 꼼꼼하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랍게 보이는 속에 색조팀의 남은 과제는 명암과 광택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조각의 가치를 결정지우는 최대 작업이라고 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얼마만큼 조각가의 기대치에 만족스러운 접근성이 보장되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었다. 
막바지 작업에 이르게 되면 다발성신경질이 터져 나왔다. 용접팀도 색조팀도 그러려니 하는 것이 놀라웠다. 다른 조각가가 만든 풍뎅이 동상과 메뚜기 동상이 옆에 있었지만 그에 비해 입체감과 사실감이 더욱 다가왔다. 아마 표현봉의 신경질적인 잔소리가 그렇게 승화시켰다고 함께 작업한 작업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런 것도 같았다. 표현봉 식대로 조각되었고 그것을 본 의뢰자들은, 이런 식대로 조각해달라며 의뢰를 해왔다. 저 깐깐하고 고집스럽고 저돌적인 표현봉 조각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같이 작업을 하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용접팀과 색조팀이 퇴근한 후에도 조명등을 밝혀가며 사다리차위에서 붓터치로 질감을 살리고 있는 표현봉이 걱정되어 한마디 건넸다.
“선생님, 건강도 생각하시고 내일하시죠.”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밤에 찾아오는 내방객을 위해서야. 쉽게 이야기해서 밤에 보는 잠자리 동상 매력을 심어주는 작업이지. 목탄으로 그려진 화구는 거칠고, 파스텔은 부드럽고, 펜은 날카롭듯, 효과적인 표현의 기법을 입히려면 조명 속에 작업해야만 비로소 깨닫게 돼. 어둠과 조명과 붓터치가 일치가 되었을 때 드러나는 선명함이기도 하지. 지금은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곧 깨닫게 될 거야. 내가 백호군을 잘못보지 않았다면 말이야.”
거의 동틀 무렵까지 작업은 계속 되었다. 무엇보다 늙은 조각가라 생각했던 표현봉은 강단 있고, 뚝심 있고, 심지가 곧은 예술가로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세 시간쯤 잤을까. 차 시동소리에 눈을 떠 나가보니 표현봉 조각가가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자넬 더 자게 두고 혼자 후딱 다녀오려 했지.”
“선생님을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운전석에서 바꿔 앉아 천천히 엑셀에 힘을 주면서 아침이 소란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것을 새삼 즐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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