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고]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139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본보 논설주간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24 15:1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禹在龍 義士 略歷(우재룡 의사 약력) ④

  山南義陣先鋒將丹陽禹公之墓
(산남의진 선봉장 단양우공지묘)


禹氏(우씨)의 先世丹陽人(선세 단양인)이니 易東先生(역동선생)의 後(후)라. 曾祖弘哲(증조 홍철) 祖秉圖(조 병도)라. 벼슬하지 않았고 考邦熙武司果(고 방희 무사과)요. 妣晋陽姜氏致龍(비 진양강씨 치룡)의 女(여)로 四二一七(4217) 甲申正月三日(갑신 정월 삼일) 公(공)이 났으니 諱在龍(휘 재룡) 字(자)는 利見(이견) 號(호)는 白山(백산)이라. 弱冠時(약관 시) 위급한 國勢(국세)에 慷慨(강개)하여 南營參校(남영참교)로 들어감이 그의 救國心(구국심)의 첫 發現(발현)이라. 마침 山南義將鄭鏞基(산남의장 정용기) 잡히다. 市民(시민)의 슬퍼함을 보고 敵(적)의 指使(지사)를 받고 官兵(관병)은 守國(수국)의 干城(간성)이 못됨을 깨달아 곧 나가 靑松(청송)에서 募士(모사)하다가 鄭公(정공)의 出獄再擧(출옥 재거)함을 듣고 參盟(참맹)하니 그 의기에 느낀 鄭公(정공)은 서로 兄弟(형제)의 誼(의)를 맺고 練習將(연습장)으로 함에 卒伍(졸오)를 敎訓(교훈)하고 每戰(매전)에 先登(선등)하더니 鄭公等(정공 등)이 立巖(입암)에서 敗死(패사)하니 이그 救國活動(구국활동)의 첫 꺾임이라. 이에 다시 鄭公(정공)의 父都察使煥直(부 도찰사 환직)을 받들어 轉戰(전전)하다가 昌寧武器庫(창녕 무기고)의 彈藥(탄약)을 襲取(습취)하려고 一隊(일대)를 이끌고 火旺山(화왕산)으로 行軍中(행군 중) 都察使公(도찰사공)이 淸河(청하)에서 被擒(피금)하니 이그 두 번째 꺾임이요. 大將(대장)을 中途奪還(중도 탈환)하려고 八公山(팔공산)으로 急遽回軍(급거 회군)하였으나 때 이미 늦었다. 또 藥彈(약탄)을 求(구)하려고 離陣中(이진 중) 部下(부하)들이 그의 節度(절도)에 어기어 붙잡혀 能(능)히 끝까지 主將所在(주장 소재)를 가리키지 않고 차례로 就死(취사)하고 公(공)도 마침내 붙잡혀 無期(무기)를 받았으니 이그 세 번째 꺾임이요. 合倂後(합병 후) 特放(특방)되자 同志(동지)들과 光復會(광복회)를 組織(조직)하여 國外養兵(국외양병) 國內募資(국내모자)하다가 諸同志被逮(제 동지 피체)하고 그는 外國(외국)으로 빠졌으니 그 네 번째 꺾임이라. 己未運動後(기미운동 후) 들어와 籌備團(주비단)을 일으키고 靑年(청년)과 勞動層(노동층)을 團結蹶起(단결 궐기)케 하여 八域(팔역)에 縱橫無盡(종횡무진)의 活動(활동)을 폈으나 敵倀(적창)의 密告(밀고)로 또 無期刑(무기형)을 받았으니 이그 다섯 번째 꺾임이라. 世界大戰(세계대전)의 胎動(태동)하던 丁丑(정축) 囹圄(영어)의 十九年(십구년)을 치르고 나와 또 동지를 찾아 돌다가 敵(적)이 降服(항복)한 乙酉(을유) 上京(상경)하여 光復會(광복회)의 깃발을 거듭 내걸고 同志(동지) 權寧萬 (권영만) 등과 會(회)를 代表(대표)하여 立巖戰地(입암전지)에 故將(고장)들의 慰靈祭(위령제)를 行(행)하고 敵獄(적옥)에서 얻은 宿疾(숙질)로 乙未三月三日(을미 삼월 삼일) 歿世(몰세)하여 達城郡瑜伽面油谷玉女峯癸坐(달성군 유가면 유곡 옥녀봉 계좌)에 묻혔다. 그는 抗敵救國(항적 구국)의 一生(일생)에 百折不屈(백절불굴)의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하였으되 늘 代表的地位(대표적 지위)에 앉지 않고 實踐(실천)을 主(주)하여 機敏閃忽(기민섬홀)한 作戰(작전)으로 敵(적)을 괴롭혔다. 配昌寧曺氏仲賢(배 창녕조씨 중현)의 女(여)로 公(공)의 滯獄中先逝(체옥 중 선서)하고 一子(일자) 興泰(흥태) 또 早卒(조졸), 一女(일녀) 崔萬庸(최만용)에게 嫁(가)하고 繼配慶州金氏熙完(계배 경주김씨 희완)의 女(여)로 一女(일녀) 張實京(장실경)에게 嫁(가)하고 二男(이남) 大鉉(대현), 相鉉(상현)이 있다. 癸卯三一節(계묘 삼일절) 建國功勞賞(건국공로상)이 追施(추시)되고 本會(본회)에서 그 起義永川(기의 영천)의 紀念碑(기념비)와 鄭公父子 李韓久義士(정공부자 이한구의사) 및 公(공)의 墓(묘)에 表碣(표갈)할세 不倭(불왜)이 그 家乘(가승)과 忠蹟(충적)을 略述(약술)하고 이여 노래를 받치노니,
비슬의 푸른 뫼 여기 大韓(대한)의 의기남자 禹利見白山(우이견백산)이 누웠네. 의기에서 살았으며 의기로서 싸우기 죽는 날까지, 석자 더꺼친 흙더미 님의 일곱 자 짧은 몸 묻혔으되 그 의기는 묻지 못해, 긴 무지개처럼 구만리 창공에 뻗고 억만년 내세에 드리워 기리기리 이 나라 이 겨레를 지켜나가리. 
癸卯年(계묘년)  月(월)  日(일), 山南義陣記念事業會(산남의진기념사업회) 建(건)
豊山(풍산) 柳奭佑(류석우) 撰(찬), 光州(광주) 盧在環(노재환) 書(서)
 <山南義陣遺史 제5편 列傳 P368~369>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