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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한 관 식 작가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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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13)
거푸집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부위마다 달랐다. 가령 잠자리 배 부분은 10마디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흔하고 쉽게 볼 수 있는 잠자리라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 보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표인봉은 곤충 사전에서 잠자리 표본까지 이미 구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번번이 시행착오도 발생하였다. 거푸집에 부을 완성도 높은 청동의 비율도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인체와 달리 마디선과 무늬 결을 최대한 살리려고 주석과 구리의 강도와 경도 비율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었다. 
사각 나무틀에서 배와 날개부분의 질감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 조각칼의 흔적을 거푸집에 먼저 새겨 두었다. 통상적인 작업과정과 달랐다. 각인선의 깊이가 잠자리동상의 기품과 밀접하다는 이론 앞에 절로 수긍이 갔다. 청동으로 만든 동상에 잠자리 영혼을 불어넣고 싶은 예술가의 열정이 오롯이 전해졌다. 자연스런 움직임을 전제로 하여 생명력에 해당하는 균형을 배가하고 싶은 떨림이, 조각도의 칼끝에서 선명하고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꼼꼼한 비율은 집착에 가까운 최선이었다. 
거푸집에서 빠져나온 토대가 여기저기에서 모양이 갖춰지자 혹시나 작업공정의 흐름을 방해할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번호를 매겨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나는 모양에 맞는 번호를 매겨 왼쪽, 오른쪽도 쉽게 구분이 가도록 배열해 놓았다. 떼 낸 거푸집은 굴러다니지 않게 노끈으로 발끈 묶어 한쪽으로 정리해두었다. 한 번씩 쳐다보는 표인봉의 눈매에서 잘하고 있다는 칭찬이 담겨져 있었다. 가급적 주변의 너저분한 상황은 단칼에 내 선에서 해치운다는 각오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목에 얹혀있는, 서화인 남편의 행방불명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행동이 굼뜰 수가 없었던 것도 같았다. 
앞쪽 배마디와 뒤쪽 배마디가 점차 줄어들게 만들어졌다. 조립, 해체, 운반이 용이한 거푸집이 순서를 기다리면서 도열한 작업장 풍경이 흡사 웬만한 제철소 용광로처럼 열기를 뿜고 있었다. 몇 번 재사용도 가능한 거푸집은 신속하게 도열해 놓은 뒷자리로 다시 옮겨놓았다. 수분의 누출을 방지하는 수밀성에 적합한 골재들은 항시 대기조로 따로 구분해두었다. 변형에 취약하지 않게 수평, 수직, 직각이 유지될 수 있는, 조각가의 손놀림을 눈썰미로 익혀두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부어넣기를 할 때 청동액체의 맺고 끊는 기술은, 손목을 재빨리 안쪽으로 꺾으면서 멈추는데 처짐이나 배부름이나 뒤틀림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표인봉조각가는 감탄했다. 
“곰 같은 백호군이 기술습득은 여우일세.”
손님이 뜸할 때마다 찾아오는 음악다방 마담에게 친해졌다며 표인봉조각가는 강이웃이라 불렀다. 성이 강씨인지, 강하게 친해서 강이웃인지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동화되어갔다. 어쩌면 조각가의 영역표시라 이해했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던 강이웃이 일의 진척도를 보며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백호씨가 일당백이라서 수월하게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아요. 호호.”
살아오면서 이토록 오래, 싫증내지 않고 일에 몰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힘든 면은 없지 않아서인지 잠수를 탈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각가가 맞춤옷에 해당한 것은 아닌가. 정말 조각가의 감성에 한발 더 다가가고 싶었다. 마침내 곤충생태 공원으로 결과물들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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