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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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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켓(12)
표현봉조각가가 일정보다 하루 빠르게 세미나에서 돌아왔다. 당연히 하루 빠르게 출근했다. 약간 들뜬 얼굴로 맞이해주었다.
“곤충생태 공원에서 청동 잠자리동상을 의뢰했지 뭐야. 마음이 바빠지니까 한가롭게 세미나를 즐길 수 있나. 하루라도 빨리 작업에 들어가려고 내려왔지. 백호군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거야. 생각보다 페이도 쏠쏠해.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파이팅 한번 하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해볼까?”
파이팅을 크게 외친 나는 새로 작업할 재료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한쪽으로 밀어놓기 시작했다. 표현봉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준비한 목록을 보며 여기저기에 전화로 필요한 재료를 주문했다. 뭔가 바삐 돌아가는 느낌이, 고삐를 죄는데 도움이 되었다. 서화인 남편의 오리무중에 꼬리에 꼬리를 물던 잡생각들이 정리되는 듯 비켜있을 수 있었다. 조각가의 칠판에 작업공정 흐름도가 그려졌다. 잠자리를 세분화하여 열여섯 공정으로 떼놓았다. 크게 머리, 가슴, 배 3등분에 두 쌍의 날개와 3쌍의 다리로 구성되어있지만 정밀함을 살리기 위해 더 많은 공정으로 다가갔다.
이제껏 인체라는 주제로 작업해온 표현봉에게 있어서 분명 잠자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 새로움이 주는 낯설고 설렌 첫발을 옮기기 위해 조각가의 가슴은 끓고 있었다. 누군가가 만든 잠자리동상보다 달라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며, 몸 구석구석에 숨겨둔 촉수를 끌어내는 가일층 노력의 발견이었다. 예사롭지 않는 눈빛을 보며 덩달아 각오를 다지는데 여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원팀이기에, 조각가의 손발이 기꺼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머리를 뺀 나머지는 으레 만들어진 동상을 보면 거기에서 거기야. 잠자리는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겹눈이 있어. 겹눈은 육각형 모양의 집합체지. 머리에서 원형으로 돌출된 눈은 전방뿐 아니라 측면 및 후면 일부까지 매우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어. 두 겹눈 사이에는 세 개의 홑눈과 한 쌍의 더듬이가 존재하고 있지. 난 이 모든 것을 조각으로 승화시킬 생각이거든. 밤샘도 각오해야할걸. 그렇다고 월급을 더 챙겨주는 것은 아니고, 보너스는 기대해도 좋아.”

조각가의 유머에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주었다. 부분적으로 나눠진 작업은 오후부터 속속 들어오는 재료에 의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부터 진을 빼버리면 시들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불식시킬, 정말 낯설고 설렌 작업으로 넘쳐나 첨벙첨벙 온몸을 맡긴 채 집중하게 되었다. 아래층 음악다방 마담은 하루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방문했다. 작업실에 꽉 들어찬 재료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
“뭐에요? 지구를 떠나려고 인공위성이라도 만들고 계시나? 뚝딱 거리는 소리에 참을 수 있어야지.”
바삐 움직이는 분위기에, 도움을 주고 싶은 눈을 껌뻑거리다가 커피머신 물탱크에 물을 채우고 전원버튼을 눌렀다.
“한때 물장사로 다져진 제가 대접하는 커피는 아마 남다를 거예요.”
표현봉조각가의 마냥 좋은 웃음이 마담을 훑으며 더욱 기세 좋게 호탕해졌다. 그러면서 잠자리 토대를 만드는 손길이 크고 날렵해진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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