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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 책 박스를 기다리며 ⑩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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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글에 붙여 라온이 태어난 지 8일째 된 날, 곤히 잠든 모습을 사진에 담고 그 위에 흰 글씨로 지은 시(詩)를 컬러프린트해서 같이 보냈다.

 (흰글씨로)
 우리 라온이(심보통 1979~)
 우리 라온이, 심즐거우니는
 눈꼬리가 올라가니 한칼하겠고    
 귀가 뒤로 젖혀져 소신있겠고
 미간이 넓어 포용력도 좋겠다.
 이마가 넓어 재물복도 많겠고
 욕심보도 없어 두루 베풀겠고
 입술이 얇아 언변도 청산유수
 콧대도 반듯해 한인물하겠구나.

이 편지글을 본 라온이 담임선생은 그날 저녁 퇴근 후 장문의 편지를 키즈노트에 써올렸다.  
핵심은 “교사로 있으면서 이런 편지는 처음 접해봤다”며 “글이 아이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 ‘잘 들어보라’며 끝까지 읽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장문의 편지로 다시 답을 주었다. 나는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배우고 깨친다는 것이 지금 당장일 필요가 있겠는가. 시간이 흘러 뒷날 ‘아 그때 선생님이 그런 편지를 읽어줬었지’하며 알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첫째 라온이는 6살 생일을 기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바로 ‘인사예절’이다. 
“라온아 이제부터는 엘리베이터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크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거야? 편의점 아줌마한테도 인사를 크게 크게 하고. 할 수 있겠지?”
 “응.”
아파트살이라는 걸 가만 살피면 단지 규모와 상관없이 작은마을살이 같은 구석이 있다. 몇백 세대니, 몇천 세대니 해도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겨우 이웃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아빠들 중 상당수는 인사예절이 영 되먹지 않았다. 부모가 그 모양이니 자식들도 목에 깁스를 한 양 빳빳만하다. ‘우리가 언제 알은 양 먼산 보듯 한다.’ 인사는 어르신들이 더 잘한다. 참 꼴 보기 싫은 모습이다.
나도 수 번 먼저 인사를 건넸다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치들은 아예 안면몰수지만, 어르신을 비롯한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를 꼭 아이들 앞에서 보여준다.
요즘은 아이들이 방앗간(편의점)에 갔다 나올 때 인사를 않고 뒤돌아서면 공손하게 인사하고 오라고 도로 카운트로 돌려보낸다. 그러면 아줌마도 좋다고 크게 인사한다. 그결에 먼발치에 선 나는 “수고하세요”라며 아줌마와 목례를 나눈다.
애나 어른이나 인사 잘해 손해보는 일은 없다. 더군다나 얼굴 골골마다 순진, 순수가 듬뿍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면 단번에 분위기가 환해진다. 헌데 부모라는 자들이 학원이나 뱅뱅 돌릴 줄 알지 그 아이들의 생기(生氣)를, 신명을 뻗칠 기회는 도통 주지 않는다.
큰애가 두손 모아 공손히 인사하니, 작은애가 뒤따라가 형보다 더 우렁차게 인사를 한다. 편의점 아줌마는 으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큰애 라온이를 보면 참 놀랍다고 생각한다. 학원도 안 다니는데 어느 결에 한글도 떼고, 연산도 뚝딱뚝딱, 사고력 수학도 제법 잘한다. 제 엄마가 가르쳐준 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것은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는 능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라온이를 가만 보면 우리 뇌는 쓰는 뇌와 읽기 뇌가 양분돼 있는 것 같다. 읽기는 신통방통할 정도로 잘하는데, 쓰기는 읽기에 비해 영 시원찮다. 그래도 맥락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건 또 훌륭하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로 어린이집에서 그림일기를 쓰도록 한 지 몇 주 됐는데, 3문장 중 마지막 문장의 느낌이나 생각, 다짐, 계획 등을 표현하는 걸 보면 ‘이제 그만 하산하여라’ 수준이다.
제 엄마는 요즘 애들은 이 정도는 다 한다는데, 정말 여섯 살짜리가 1시간도 넘게 책상에 앉아 국어, 연산, 사고력 수학을 마친다는 게 보편적이란 말인가?
둘째 녀석은 언어능력이 보통 이상이다.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카피해서 활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3세 답지 않다. 국어는 그렇다 쳐도 어린이집에서 배운 영어 단어와 표현을 또랑또랑하게 아빠한테 알려준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뜻인데, 교사와 학생 사이가 그런 식이면 일취월장, 일신우일신이란 뜻이겠다. 
나는 두 아들을 내 스승으로 여긴지 오래다. 그래서 아비로서 기본을 알려주고 기본 이상을 아들들에게 배우곤 한다.
내년에 큰애가 초등학교에 가면 작은애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동선이 반대가 된다. 그래서 동선이 같은 유치원으로 옮길까 하고 요 며칠 고민했더랬다. 
아내와 나는 어린이집에 그냥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리 결론 내린 이유는 다르다. 
아내는 어린이집은 환경이 좋기로 차라리 유치원에 드는 교육비로 학원을 보낼까 싶다고 ‘교육’을 이유로 유치원 행을 접었지만, 나는 바론이가 좀더 마음껏 뛰어놀기는 바라는 ‘신명’ 때문에 접었다. 그러면서 내심 바론이를 믿어보자는 심산이었다. 제 형 따라 하는 걸 좋아하니 형 따라 어린이집 가기를 학수고대했듯 공부도 형 따라 하지 싶은 것이다.
내가 우리 라온이 바론이 이야기를 끌어쓴 까닭은, 결국 작가인 아비로서 두 아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 친구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 청춘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써서 들려주고 남길 것인가가 내 과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0대라면 꼭 알아야 할 민족 교과서>
 <대한민국 10대라면 꼭 알아야 할 정신 교과서>
 <대한민국 10대라면 꼭 알아야 할 민속 교과서>
 <에세(essais) 우리 민족>, <에세(essais) 우리 정신>, <에세(essais) 우리 민속> *경전 형식으로 쉽고 리드미컬하게      
이런 제목들이 감도는 가을이다. 적실히 보이도록 힘써보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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