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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137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본보 논설주간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10 15:14
  • 수정 2024.01.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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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在龍 義士 略歷(우재룡 의사 약력) ②
全軍(전군)이 戰敗地(전패지)에 집합하여 大將(대장) 葬儀(장의)를 縞素禮(호소례)로서 거행하고 先大將(선대장)의 父公(부공) 東广先生(동엄선생)을 받들어서 陣事總統(진사총통)으로 뫼시고 部署(부서)를 다시 편성할 때에 公(공)은 練習將(연습장)으로 되어 훈련에 전력을 다하고 접전이 될 때는 항상 선두에 나가서 先鋒努力(선봉노력)을 하여서 淸河(청하), 興海(흥해), 新寧(신녕), 義興(의흥), 義城(의성), 軍威(군위) 모든 州郡(주군)을 차례로 진격하고 靑松(청송)지방에서 때 아닌 큰비를 만나 유련하다가 왜적과 교전되어 우리의 화승총은 우습한 기후이기 때문에 사용이 잘 안되고 그뿐 아니라 탄약도 핍절되었다. 부득이 후퇴하여 우리를 추격하는 왜적들을 英陽(영양), 奉化(봉화) 등지로 誘入(유입)시키고 본부는 沿海(연해) 등지로 회군하여 또 興海(흥해)를 함락시키고 淸河(청하)를 경유하여 盈德(영덕)을 진격하고 그때에 陣中(진중)에 약탄이 전부 핍절되고 왜적들은 우리를 추격코져 四方(사방)으로 포위하고 오는지라. 이 應急(응급)을 대비코져하여 전군이 각지로 출장하여 각 지방 유격대에 연락하여 군수품을 준비하여 江原道(강원도)로 집합하기로 約定(약정)하고 각 부대를 모두 파견시키고 東广先生(동엄선생)은 陣地(진지)를 물색코져 먼저 江原道(강원도)로 가다가 淸河(청하)에서 왜적에게 被擒(피금)되어 大邱(대구)까지 압송되었다가 永川(영천)에 돌아와서 殉節(순절)하다. 공은 그때에 一枝軍(일지군) 七十名(칠십명)을 인솔하고 昌寧(창녕) 등지에 출장되어 군수품을 모집하다가 본부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李世紀(이세기) 등을 더불고 壯士(장사) 數十名(수십명)을 선발하여 河陽(하양) 要路(요로)에 잠복하여 大將(대장)을 탈환코져 하였다가 군기누설이 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李世紀(이세기) 등을 더불고 長鬐邑(장기읍)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돌아와서 戊申(무신) 正月朔(정월삭)에 普賢山(보현산) 巨洞寺(거동사)에서 戰殉將兵(전순장병)의 제사를 진설하고 靈前(영전)에서 최후 一人(일인)까지 최후 一刻(일각)까지 싸우기로 맹서를 올리다 鄭純基(정순기) 등 모든 部將(부장)들과 협의하여 興海(흥해) 崔世翰(최세한)을 맞이하여 本部大將(본부대장)으로 추대하다 崔大將(최대장)이 着任(착임)하여 작전계획을 설계하여 慶尙道內(경상도내)의 큰 산을 모두 점령하여 본부는 南東大山(남동대산)에 웅거하여 각 분대를 조종하게 하고 각 부장들이 각기 자기 분대를 인솔하고 도내에 큰 산 한 지역씩을 점령하고 유격전으로 싸웠다 公(공)은 그때에 八公山(팔공산) 지역을 담당하여 桐華寺(동화사)에 근거를 두고 道內 各 山(도내 각 산)에 기맥을 통하여 二年(이년)간 싸움을 계속하였다 뜻밖에 불행한 운수가 있다 八公山(팔공산) 인근에 어느 동리가 동화절 산을 무조건 남벌하는 것을 승려들은 법관에 고소하니 그때 법관은 왜정법관인데 그 절에 義兵(의병)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적들은 질풍과 같이 동화사를 습격하는데 그날 義兵(의병)은 모두 출동 나가고 단 五名(오명)이 日直(일직)하고 있었다. 적들은 義兵(의병)을 한사람씩 문초하다가 불복하니 죽이는데 끝으로 十五歲(십오세) 되는 吳淳(오순)이 살려준다는 말을 듣고 낱낱이 가르쳐주고 吳淳(오순)도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였다. 公(공)은 이때 大邱(대구)에서 동지들과 一千六百兩(일천육백냥)을 가지고 엽총 五十挺(오십정)을 구입하다가 피금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문답이 있었다.
[문] 疑兵은 무슨 이유로 하였는가? [답] 나라를 찾고저 한 것이다.
[문] 돈 一千六百兩(일천육백냥)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답] 민간에 의연을 모집하였다.
[문] 나라를 찾으려면 자기 私財(사재)로 하거나 국가의 公錢(공전)으로 하는 것이지 백성에 모금하는 것은 도적이다? [답] 국왕이 나라를 도적맞고 백성이 인권을 도적맞은 이때에 私財(사재) 公錢(공전)이 어디 분간할 수 있으랴.
재관은 방청을 금지하고 한참 침묵하더니 종신징역으로 언도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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