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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 책 박스를 기다리며 ⑨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4.01.0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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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라온이 바론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매년 생일을 며칠 앞두고 라온이 바론이에게 읽어줄 편지를 보내달라고 한다. 엄마 아빠를 대신해 선생님이 반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 것이어서 반친구들과 나눌 편지를 써달라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3일 만3세 생일을 맞은 바론이에게는 여느 해처럼 의성어와 의태어를 섞은 감각적인 동시 형태의 생일축하 카드를써서 전해줬다.
지난 9월 9일 만6세 생일을 맞은 라온이에게는 여느 해와 달리 진중한 편지를 써서 전해줬다. 아이를 키워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자르고, 상상외로 많은 것을 깨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라온이는 어느덧 아빠보다 나은 실력을 가진 분야가 생겨났다.
14개 숫자조각을 고른 다음 14개 숫자조각 모두를 먼저 바닥에 내려놓으면 승리하는 ‘루미큐브’라는 게임의 경우, 아빠는 라온이에게 게임이 안된다. 단 한 번도 이겨본 일이 없다.
엄마와 라온이는 용호상박이고, 엄마 아빠 라온이 중에선 아빠는 만년 꼴찌다. 아빠가 한번 붙어보자면, 라온이는 좀은 우쭐대며 고사한다. “아빠는 나한테 안 돼.” 엄마 정도가 적수라는 뉘앙스가 팽배하다.
루미큐브는 최근의 일이고, 올 하반기 들어 또 한 번 부쩍 성장한 라온이를 보면서 이번 생일 편지는 ‘형님’에 상응하는 생일편지를 적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해서 올해 생일편지는 일찌감치 써두었다.
내용은 이렇다.

(검정펜으로)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라온이에게
라온이가 어느덧 여섯 생일을 맞았구나. 축하한다.
여섯 생일을 맞은 너에게 아빠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여러 날 고민했단다.
여섯 살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시기이고, 또 내년이면 초등학
생이 되기 때문이란다.
아빠는 고민 끝에 라온이에게 ‘기본’을 이야기해주기로 했단다. 잘 들어보렴.
아기에서 형아가 되면, 제일 먼저 익혀야 하는 게 ‘기본’이란다.
기본은 ‘형아’의 일상에서 아주 중요하단다.
여섯 살 라온이의 기본은 5가지란다.

(파란펜으로)
첫째,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란다.
둘째, 친구와 선생님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이란다.
셋째, 잘못은 빨리 인정하고, 부끄러운 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란다.
넷째, 선생님과 엄마아빠에게 많은 것들을 묻는 것이란다.
다섯째, 친구와 선생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이란다.

(검정펜으로)
이중 둘째, 셋째를 좀더 쉽게 말하면, 매일매일 아주아주 신나게 놀되,
친구와 동생들에게 예쁜 말을 사용하고, 선생님 말씀을 늘 잘 따르고,
잘못을 했을 때는 바로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파란펜으로)
라온아, 너와 오로라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 또 엄마아빠,
또 어린이집의 꽃과 나무들의 공통점이 딱 하나 있단다.
아주 큰 비밀인데, 아빠가 여섯 생일을 기념해 특별히 알려줄게.
그건 바로 우리 모두가 ‘우주의 씨앗’이라는 거다.
라온아, 건강한 씨앗은 그 어떤 것이라도 무럭무럭 자라게 되어 있단다.
건강하면서 작은 씨앗일수록 더 왕성하게 자라 새로워지는 것 역시 기본이란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라온아. 우주의 씨앗은 우주를 떠받칠 만큼 자란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자라서 반드시 우주를 위해, 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거라.
그 뜻한 바를 양껏 펼치렴. 넌 몸도, 마음도, 생각도 큰 아이란다.
2023.9.8.
-대전 글방 ‘궁고재’에서 아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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