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2.27 17: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관 식

작가 

 

모처럼 한파가 지나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회로부터 고립된 은둔형 외톨이로 살다가 표현봉조각가 작업실에 출근하고부터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하나같이 밝았고, 바빴고, 친절했다. 음울하고 비관적이고 짜증 섞인 하루하루는 거리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껏 실체가 모호한 반항에서 스스로를 갉아먹고 살아왔다면,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속속들이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인파들 속으로 들어왔다면 이미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은 기필코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젊음이 북적대는 신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까. 적어도 내겐 그랬다. 한발을 옮기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한발을 옮기며 새로움으로 들떴으며, 한발을 옮기며 어제의 나를 잊기로 했다. 공평하게 시간을 주고,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공평하게 능력을 준 젊음의 거리에서 뒤처지지 않은 내 발걸음도 하나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사각무대가 설치되어 거리가 좁아진 곳에 거리공연이 펼쳐져 있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바이올린을 켜며 노래를 불렀다. 사각무대 둘레에서 기꺼이 공연을 즐기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앉거나, 서거나, 걸어가거나 무수하게 날아드는 음표와 그에 맞게 실어 보내는 노래가 젊음의 거리에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었다. 누구하나 열외로 보이지 않았다. 젊음은 포효하는 맹수가 되어도 이해되고, 길 잃은 양이 되어도 충분히 받아들여졌다. 이 거리에 들어서면 어떤 암호도 해독이 되어 마음의 담을 허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진리로 존재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출구를 이 거리에서 찾고 싶었다. 그래야만 뒤쳐져있는 인생에 봄 햇살도 찾아 올 것이다. 서화인 전화가 울렸다. 공연장 뒤쪽에서 전화를 열었다. 

“뭐하세요? 집에도 없어서 전화했어요.”

“여기 신촌인데, 정말 신촌까지 왔어요. 내가 스스로 신촌에 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는데 어찌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대견하고, 거짓말 같이 여기에서 공연을 보고 있어요.”

“참 잘했어요. 그렇게 똑똑 노크하면서 살다보면 어느 날, 세상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며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걸요. 집에 오면 전화해요. 칭찬으로 뽀뽀 열 번 예약.”

괜히 가슴에 힘이 들어갔다. 공연장 뒤쪽에서 전화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혹시 털어놓았을 때 사건을 키우거나, 이만큼 유지하는 관계에서 삐거덕거리는 염려를 배제할 수는 없었다. 

“조금 있다가 갈게요. 김치찌개 먹고 싶은데 솜씨 발휘해줄래요?”

“접수 완료.”

근심어린 말투에서 명량해진 목소리로 바뀐 통화가 끝나자 신촌의 소리들이 일제히 내 안으로 몰려왔다. 그곳에서 나는 신촌사람이 되어있었다.                -계속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