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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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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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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보현동 효자 이야기

산남의진의 땅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에 참으로 대단한 효자가 있었단다. 충효(忠孝)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해 보자는 김춘기 자양면 노인회장님의 뜻에 따라 찬양문(讚揚文)을 전해 받아 역문(譯文) 작업부터 진행한다.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는 비각이나 작은 효(孝)공원이라도 조성해서 그 뜻을 기리고 선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재진, 권혁화 선생님을 비롯해서 여러분의 역문(譯文)과 도움에 힘입는다.

 

讚揚文

右讚揚事謹按慶南儒薦則永川郡紫陽面普賢洞孝子金周憲 系出金海駕洛王后孫安敬公十一代孫諱振

熙孫諱翰祚子孝子慶孫侄 性本純實力穡耕稼以孝事親無異叔父 甘旨定省 정성(定省) :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로, 어버이를 제대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자식이 된 자는 어버이에 대해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하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凡爲人子之體,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가 있다.

克養志軆 一夜火灾猝發渾室入火 孝子適有事宿隣家驚起回家則親在房中而不得脫火矣 孝子大呼曰 父死於火是我大罪直冒火入房救出 老父父雖無恙自己則偏身傷火幾至死境 呼其妻尹氏曰 我死父生我無所恨 但我死之後奉養之節一如我生則我死 何憾勿負勿負言訖而逝 此天以火表其孝而人所未及者多矣 揆其實蹟宜乎棹楔 도설(棹楔) : 홍살문(紅箭門)을 뜻한다. 정려(旌閭), 정문(旌門), 작설(綽楔), 도설(棹楔),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陵), 원(園), 묘(廟), 궁전(宮殿), 관아(官衙)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門)이다.

而子孫零替 영체(零替) : 세력이나 살림이 아주 보잘것없이 됨.

時制不古尙在寂然无闡以其秉彛 병이(秉彝) : 상도(常道)를 지키는 떳떳한 성품을 지닌다는 말이다. 《시경》〈증민(烝民)〉에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음에 법칙이 있도다. 백성이 떳떳한 성품을 갖고 있는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 하도다.[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라고 하였다.

具性者豈慨歎哉 或本會按狀有感先付棗梨 조리(棗梨) :이조(梨棗)와 같음. 책을 판각하는 데 쓰는 목재로 책의 인쇄, 혹은 책을 뜻한다.

俾建碑閣以爲彰善揚美之意 依儒論讚揚事  孔夫子誕降二千四百七十七年 月 日

慕聖公會/會長 判書 金宗漢/副會長 承旨 金炳興/贊成長 判書 朴箕陽/顧問 輔國 閔丙奭/判書 閔泳璘/參判 尹甯求/參判 權益相/承旨 金鼎鎭/叅書 朴熙陽/侍從 李鐘泰/參奉 金思奎/贊議長 參領 金冕朝/都有司 主事 申鉉台/副有司 幼學 宋柱憲/庶務有司 委員 鄭在烈/經學有司 參事 李肯馥/

曲禮有司 進士 兪鎭晩/幹事有司 敎官 崔承完/敎員 文鐘擧/幼學 申壽輔/參奉 白南圭/主事 全永俊

숭상할 찬양 사실을 삼가 살펴보건대, 경상도의 유자(儒者)들이 천거하니 영천군 자양면 보현동의 효자 김주헌(金周憲)이다. 선계(先系)가 김해 가락왕에서 나온 후손 안경공(安敬公)의 11대손 휘(諱) 진희(振熙)의 손자인 휘(諱) 한조(翰祚)의 아들 효자 경손(慶孫)의 조카이다. 성품이 본디 순실(純實)하고 밭 갈고 김매며 농사일에 힘써서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숙부께도 다름이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문안하여 부모님 뜻을 받들고 극진히 봉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화재가 나 온 집안에 불이 들었다. 그때 마침 효자는 일이 있어 이웃집에서 자다가 놀라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모님은 방 안에 있으면서 불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효자가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불 속에서 돌아가시면 이는 저의 큰 죄입니다.” 하고 곧장 불길을 무릅쓰고 방 안으로 들어가 늙은 아버지를 구하여 나왔다. 그런데 아버지는 비록 탈이 없었으나 자신은 온몸에 화상을 입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효자는 아내 윤씨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고 아버지께서 사셨으니 한이 없소. 다만 내가 죽은 뒤에 부모님 봉양의 절도를 내가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해준다면 나는 죽어도 아무런 유감이 없으리다. 이 기약 저버리지 말아주오. 저버리지 말아주오.” 라고 말하고는 끝내 죽었다. 이는 하늘이 불로써 그 효성을 드러낸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바가 많은 것이다. 그 행적의 따져보면 정려(旌閭)로 그 효성을 드러내야 마땅하겠으나, 자손이 빈궁하고 침체한데다 지금의 제도가 옛날과 같지 않아 적연하게 드러낼 수 없으니 떳떳한 성품을 갖춘 자로서 어찌 개탄하지 않으랴. 우리 회에 올라온 행장을 살펴보고 느낀 바 있어 먼저 인쇄하고 비각을 세우도록 하여 착함을 표창하고 아름다운 행실을 드러내는 뜻으로 삼고자 한다. 유자(儒者)들의 논의에 의거하여 이 사실을 찬양하노라.

공부자(孔夫子) 탄강(誕降) 2477년[서기 1926년]  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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