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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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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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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에어포켓(10)

초인종이 울렸다. 한걸음에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속삭이듯 서화인이 서있었다. 등 뒤로 덩치를 키우는 겨울햇살이 흩어지고 있었다. 문을 닫기도 전에 덥석 안아서 입술을 포개었다. 약간 망설이던 서화인이 뒤로 손을 뻗어 현관문을 닫았다. 마치 달래듯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소파 팔걸이에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아주었다. 

 

 나는 맹렬하게 가슴속으로 얼굴을 밀어 넣었다. 장난기어린 동작이라 생각했는지 서화인은 까르르 거리면서 두 팔로 힘껏 감싸주었다. 

교통사고 명단에도, 행방불명 명단에도 서화인의 남편은 며칠이 지났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모하비를 몰던 음주운전자는 정말 남편을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겨버린 것일까. 하다못해 토막기사 한 줄 없이 세상은 평온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목격하지 않았다면 세상의 평온을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음주운전으로 비틀대며 달려와 사람을 치고, 뒷자리에 짐짝처럼 싣고 사라진 것이 내 눈앞에서 자행되었다. 내가 아는 단서는 모하비 4륜구동이라는 것 밖에. 

 

명상을 입히기 위해 칼을 휘두른 남편과 어떻게 엮인 서화인과의 관계를 낱낱이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남편은 비웃듯 명령을 어기고 폭력을 일삼아 왔다. 법적으로 부부인 두 사람 앞에 나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한계에 끙끙 앓기도 했다. 다만 신고는 하지 못해도 서화인에게는 털어놓고 싶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에서 벗어났기에, 뺑소니한 모하비에게 감사의 의사표시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남편이 뜸해졌죠?”

혹시나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다. 한차례 섹스가 끝난 뒤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깍지 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양미간을 찡그렸다. 

“남편얘긴 하지마세용.”

“혹시 이건 가정인데 우리 앞에 다시 안 나타난다면 춤이라도 추겠죠?”

“그 인간이 얼마나 악착같은데요.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다리붕괴 때도 병원에서 귀신처럼 살아나서 일주일 만에 집에 왔어요.” 

 

 

“그 인간이 얼마나 악착같은데요.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다리붕괴 때도 병원에서 귀신처럼 살아나서 일주일 만에 집에 왔어요.”

그런 사건도 있었구나. 휴대폰으로 ‘성수대교붕괴’를 검색했다. 가운데 상판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직장인과 등굣길 여고생 등 32명이 사망한 기사를 읽으면서 왠지 소름이 끼쳤다. 

“다리 상판이 무너져 사망한 속에서도 살아났다 말인가요?”

“네.”

“차에 치인 현장에서, 가해 운전자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를 싣고 뺑소니했다면, 남편이 피해자라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당신도 그 인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네요. 어떻게든 사라지게 하고 싶지만 오뚝이처럼 징글징글하게 일어날걸요.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잠잠하네요. 왜 몰랐을까? 내가 당신에게 너무 빠져 그 인간을 잊고 살았나?”

서화인의 말대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다. 달리고 있는 다리가 무너진 속에서도 살아난 생명력이라면 거짓말처럼 나타나 우리를 더욱 끈질기게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길가에서 숨어 지켜본 남편의 몰골은, 처참했고 피투성이로 축 늘어져있었다. 거기다가 음주운전을 숨기기 위해 숨통을 죄여 완전범죄로 마무리 지어줄 것이다. 서화인에게 사실을 털어놓기보다 더욱 단단해진 남자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열기 머금은 깊은 숨이 서화인의 목젖에서 쿨렁거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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