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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영천상여소리 계승자 정기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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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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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전통문화 보존위해 상여소리 익혀야” 

상여소리는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이 불러주는 노래이다.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는 향도꾼 혹은 상두꾼으로 불리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소리이다. 농촌에서는 초상이 나면 마을 단위로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동해서 장례를 치르고, 또 상여꾼들이 되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우리네 눈시울을 적시는 슬픈 가사와 가락이 일품이다. 

상여소리는 죽은 사람의 저승 가는 길에 노자돈까지 걱정하는 인간의 순박한 정이 상여소리 가사에 나타나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이기도 하다.

요즘 전통문화인 상여나 상여소리는 관심과 활용성이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인 영천지역 상여와 상여소리 등 상여문화를 지속적으로 발굴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상여소리 계승자인 영천시 화북면 정기하 씨. 그는 지금이라도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기하 씨를 만나 영천상여소리와 영천지역 민속문화 보존과 발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옛날에는 상여소리 잘하는 선 소리꾼이 마을마다 한 두명 있었는데. 요즘은 이같은 소리를 전수해 줄 사람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 된 만큼 문화유산 발굴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대책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영천상여소리 계승자인 정기하 씨는 “70~80년대까지만 해도 영천지역 마을어귀마다 상여를 보관해 놓고 초상이 났을 때 빌려주는 ‘상여집’이 마을마다 있었고, 상여소리 잘하는 선소리꾼도 한 두명씩 있었다”고 했다.

“상여와 상엿집은 각 마을마다 필수적으로 있었고, 마을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귀중한 우리 전통문화임”을 강조한 그는 “장례문화가 현대식으로 서서히 바뀌면서 상여소리가 대부분 사라졌고, 상여집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흉물스럽다며 철거되어, 이제는 찾아보기 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현재 구전으로 내려오는 영천지역의 상여소리는 지역별로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상여소리는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시·도 문화재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그는 “내 나이도 있고, 내 목소리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영천상여소리를 제대로 전하고 보존해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이 물려주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기하씨는 특유의 구성지고 애달픈 목소리로 상여소리를 비롯 모심기, 지신밟기, 방아타령 등 영천지역에서 이들 4개 민요 계승자로 불려지고 있다.

화북면이 고향으로 7남매 가운데 6째로 태어난 정씨는 어릴적부터 마을에서 소리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끼를 발휘했다고 한다.

7살때부터 마을 모심기에 가서 모내기 노래를 하면서 일찍부터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구수하고 애절한 목청을 인정받았다. 

“7남매 중 밑도끝도 없는 집에 애는 낳고~ 아바이는 놀러만 다니고~ 어마이는 골탕만 든다...” 당시 어린나이에 자신의 가정사를 내용을 넣어 부른 모심기 민요소리에 동네 어르신들로 놀라워 했다.

아버지 정호용 옹(1914년생)은 한학을 배웠고, 학교에서 한문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공무원(자천 면사무소 근무), 풍수학자로 다방면으로 활동한 덕에 정씨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아 받았다고 한다.

정기하씨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아버지와 함께 상갓집을 자연스럽게 찾으면서 당시 상여소리를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어흥-어흥- 어하룽차 어-흥 어하룽차 어-흥 어가리룽차  어-흥  이세상에 나올적에 누덕으로 나왔는고 어흥-어흥-어하룽차 어흥....”

장지를 가면서 선소리꾼이 상여앞에 앞소리를 메기면, 상여를 맨 전체 상여꾼들이 받는 교창형식으로 불려지는 영천상여소리는 가사와 가락은 그 시대상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민속자료다. 

“어렸을 때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떠날 때 노자돈을 주었던 상여 문화가 기억된다”고 밝힌 그는 “마을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보통 꽃상여에 어르신을 모시고 무덤까지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타고난 목소리로 상여소리를 해 마을 주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당시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이라 마을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직접 상여를 메고 소리를 하면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씨는 고향인 화북면 자천리에 있던 상엿집이 2009년 당시 300여만원에 경산으로 팔려갔고, 이 상엿집은 전국 상엿집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가 지정한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귀중한 민속자료로 경산시의 관광문화재로 변신한 사실을 두고 아쉬워 했다.

“우리지역에 있던 귀중한 상엿집이 경산으로 팔려가도록 귀중한 가치를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밝힌 그는“지역에 산재한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자치단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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