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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통의 보통글밥 ] 책 박스를 기다리며 ⑥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2.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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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6.

상고사(上古史)의 사(史)가 두드러져 보여 마치 역사에 매진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상고사의 사(史)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 역사에 스민 정신의 줏대 ‘얼’에 천착해 볼 심산이다. 

그러나 ‘얼’을 살피려면 역사뿐 아니라 말글살이, 문화살이, 생활살이 등은 물론이고 그 시대의 천문살이, 지리살이 등도 두루 섭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섬긴 하늘(天)을 빼놓고, 하늘에서 비롯된 미물(神)에 대한 신앙을 빼놓고 ‘얼’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대물림되고 대물림되면서 변형된, 그러나 근본적인 맥락은 흔들림 없는 그 얼의 정수를 뽑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뽑아냈다고 뭔가 책임을 다했다거나 뿌듯하기만 할 수도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우리 현실이 절벽처럼 아찔하고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늘을 찌를 듯 선 절벽이 무너지기 전에 뽑긴 뽑아야 할 것이기에 하겠다는 것이다. 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말 풀이사전>은 얼빠진 대한민국을 진즉부터 이렇게 진단해 놓았다.

“한 나라의 문화적 힘은 그 나라 말의 어휘 수와 그 어휘의 세련된 정도로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말 어휘의 총량은 많지만 그중 열 가운데 일곱이 한자말이라고 한다. 게다가 나머지 셋도 일본말이나 영어 같은 외국말의 때에 절어 있음이 사실이다. … 일제의 침략에 동조하면서 부귀를 누리던 이들은 앞장서서 일본말을 마구 퍼뜨렸다. 또 해방 뒤부터 지금까지는 영어 구사 능력이 신분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 어느 시대나 외국말글이 우리말보다 높은 ‘신분’을 누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말 풀이사전> 4~5쪽

반면 “프랑스는 ‘국어 보호법’을 제정하여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국어를 보호하고 있으며, 그 국민들은 일상적인 대화 가운데서도 어법을 어기게 되면 스스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다음에 말을 바로잡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말 풀이사전> 5쪽

중요한 고대사 책들은 진즉 불타 버리고, 우리 말글살이는 점점 시원찮아져, 인간사는 빠르게 재재(자잘해졌-)로워졌다. 어느 누구도 이것이 중차대한 문제라고 의식하지 않는다. 강단사학은 재야사학을 유사역사라고 폄하하고, 재야사학은 생각만큼 노력은 않은 채 주의주장만 뿜어대 불신만 팽배해진 모양새다. 시원찮아진 말글살이에 행동하는 국문학자는커녕 개탄하는 학자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 간판은 영어 일색이고, 우리 국민은 국어는 잘 몰라도 되지만 영어를 잘못하면 부끄러워한다. 게다가 자잘해진 인간살이는 시대 흐름이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대개가 간주해 버린다.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요지경 속이다.    

하버드대학이 가르치는 50권 고전을 정리한 <열린 인문학 강의>는 우리가 얼마나 자잘한 인생살이를 영위하고 있는지 알려 준다.

“거의 모든 분야의 문헌에서 역사는 다양한 면모를 띠는 카멜레온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까지 인류의 기록을 모두 담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불가능하겠지만요. 천문학을 제외하면, 역사만큼 그 범위가 광대하면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주제는 없습니다. 교과서들에 실린 가짜 역사만 빼놓고 보면, 역사의 윤곽은 전혀 잡히지 않았지요.” 

<열린 인문학 강의> 24쪽 

저자는 교과서에 실린 역사를 “가짜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역사를 규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명쾌하지 않은가?

때문에 저자는 이렇게 하는 게 보다 적실한 역사쓰기라고 안내한다. “따라서 짧은 글 한편에다 가장 이른 시기부터 가장 최근까지, 역사의 굵직한 시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일은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열린 인문학 강의> 24쪽    

적실한 역사쓰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에서 배운 ‘가짜 역사’를 갖고 저마다 굵직한 시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일이라고 명문 하버드대학은 가르치고 있다.

허면 우리들 ‘-살이’가 자잘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인용의 미’를 살리는 중인 만큼 칼럼 일부를 인용한다. 

“8.15 광복은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을 해체하고 한민족의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역사 체계를 세우는 임무를 역사학계에 부여하였다. 미군정 시기 친일 세력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역사학을 주요한 체제경쟁 수단으로 여겼던 북한의 초청으로 백남운・김석형・박시형・최익한・도유호 등이 월북하였다. 6・25전쟁 와중에 현실정치에 참여하던 역사학자 정인보・안재홍 등이 납북되어 공백이 생기자 식민사학 유산으로 비판받던 문헌고증사학이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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