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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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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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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에어포켓(9)

서화인의 남편은 증발했다. 누구에게도 이런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사실 어젯밤 벌어진 사건은 분명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새벽 여명기를 밟으며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는지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표현봉 조각가가 객원교수로 세미나에 참석차 서울을 떠난 덕분에 작업실은 문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긴장감이 느슨해진 이유가, 출근에 맞춰진 리듬이 한풀 꺾인 영향이 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젯밤 기억을 다시 모았다. 깊은 시각, 칼을 손에 든 남편의 위협에 큰길 도로를 향해 뛰었고 금방 거리를 좁힌 남편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추위 탓인지 사람도, 차도 없던 도로에 차한대가 비틀대며 달려왔다. 곧 남편을 들이받고 엉거주춤 정차한 차에서 동승자와 내린 운전자는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뒷좌석에 실어 사라졌다. 나는 두려움으로 길가에 몸을 숨겼고, 목격한 것은 차량번호도 아닌 모하비 4륜구동 차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법적으로 이혼수속이 진행되는 서화인과 눈이 맞았다는 것은 도덕적면에서, 법률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내가 뺑소니차량 신고를 하는 즉시 상당히 귀찮고 성가신 일에 덤터기를 쓸 것이 불 보듯 분명했다. 혹시 의외의 목격자나 자수차량이 있을지 몰라 공중전화로 인근 경찰서 교통사고 접수문의를 해봤다. 어젯밤은 세상이 멈춘 듯 조용했다며 담당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더욱 분명해졌다. 서화인의 남편은 완전하게 증발한 셈이다. 

서화인을 안을 때 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남편 생각에 몸이 경직되는 것을 순간순간 느낄 때가 많았다. 서화인 또한 남편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손마디가 저리거나 심장박동수가 빨라질 때도, 지켜줄 방패막이가 되고 싶었다. 그런 우려와 근심을 한방에 해결해준 모하비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만 어떻게든 남편과 떼어주고 싶었던 바람이 현실로 다가왔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놀이터를 지나 큰길도로로 걸음을 옮겼다. 틀림없이 무슨 흔적이라도 남아있을 것이다. 

어젯밤 어둠 속이였지만 충돌한 사고지점을 가늠하여 산책 나온 것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다행히 핏자국이 있었다. 깨어진 한쪽 사이드미러도 길가에서 포착되었다. 어쩌면 남편을 싣고 간 가해자들은 병원보다, 음주운전에 대한 죄명이 뚜렷하기에 완전범죄를 노렸을 것이다. 웅덩이를 파서 묻거나, 돌을 달아 물속에 던져버리거나, 토막을 쳐서 냉동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기회를 엿보는 그런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할지 모른다. 아무튼 남편을 세상에서 흔적 없이 아웃시키기에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서화인에게도, 내게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찜찜하고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왠지 이 모든 연결고리가 내게서부터 시작되어 한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갔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온 몸이 경직되어왔다. 서화인에게 알린다면 좋아할까. 날 원망할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무엇 하나 손에 잡혀 확실한 형체를 보여주지 않았다. 깨어진 사이드미러를 주워 집으로 왔다. 서화인이 보고 싶었다. 전화로 불렀다. 서화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남자가 새삼 발기하고 있었다. 겨울햇살이 밝아서 창가가 살아나는 아침을 갓 넘긴 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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