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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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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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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에어포켓(5)

이미 사전에 모델로 제안했고, 승낙했기에 거부감 없이 마담의 얼굴을 오밀조밀 뜯어보는데 표현봉은 인색하지 않았다. 괜히 내가 미안하여 주변청소에 딴청을 부리며 내심 두근거렸다. 혹시 말로만 듣던 나체모델로 세우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 윤곽을 파악한 조각가는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델에게 원통형 무대에 서보라고 손짓했다. 마담은 가볍게 걸어가서 원통형 무대에 올라섰다. 그런 세심한 움직임이 조각가의 밑그림 속에 반드시 녹아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마담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한 포즈 속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니까 긴장하지 말고, 자! 시선과 고개도 가슴과 엉덩이도 릴렉스, 릴렉스. 알맞은 포즈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헛기침을 해요. 난 어느 포즈에도 준비가 되어있어.”

마담의 헛기침 속에 표현봉이 쥐고 있던 목탄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담과 스케치북을 번갈아 쳐다보며 윤곽선 자체의 강약이나 굵기의 선명도가 부각될수록 시각적 특성이 두드려지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형태와 음영과 떨림과 인상이 파악될 때쯤, 표현봉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캐치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하고 일어나서 원통형 무대를 한 바퀴 돌아주었다. 원로작가의 단단한 아집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둠이 한 칸 내려온 십일월 여섯시였다. 

“예술가는 중창단속에 섞여 한 파트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노래는 반드시 필요한 거야. 멈추지 않고 탈선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 했을 때 평가도 신뢰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밑그림에서 작가의 영감이 얹어져 수많은 시도가 보장된다면 그만큼 구상과 구도의 발판은 초고의 완성작과 닿아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저토록 날렵한 소묘와 재빠르게 묘사한 크로키 형식을 띄고 있지만 표현봉은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도 노인의 기력 때문이 아니라 집중력 때문이라 이해했다. 손등으로 땀을 훔친 조각가는 약골 체력을 변명이라도 하듯 목탄 가루를 힘주어 털어내었다. 

목탄 연필로 그려진 스케치는 반질반질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 때, 펜과 연필과 파스텔로 콘티를 잡았는데 역시 조각 밑그림은 목탄만한 게 없었어. 이 진중하고 묵직한 터치가 너무 좋아. 그리고 나이 먹은 나와 닮아 있는 게 고마울 뿐이지. 목탄은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정착한 재료야. 나무를 태워서 만든 목탄은 자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인위적인 소재보다 전혀 다른 차원의 결과물이 만들어져서 좋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처럼 말이야. 헛헛헛.” 

표현봉 작업실에서 퇴근한 걸음을 뚜벅뚜벅 옮겼다. 왠지 에워싸고 있는 깊은 곳에서부터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음속에 매복해있던 푸른 기운이 조금씩 삐져나오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 딱히 집어 설명하기 어렵지만 언제부턴가 감성이 싹튼 것은 아닐까. 현관문 앞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약간 경계태세 안에서 몸을 돌렸을 때 남편의 손찌검을 받던 이웃집 여자였다. 괜히 엮이면 안 좋을 것 같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는지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커피 한잔 주실래요?”

작정하고 만났는데 계속 거리를 두기에는 너무 가까운 이웃사촌이었다. 

“남편 분은 이제 안 오세요?”

내가 생각에도 이 상황에서 남편의 안부를 묻고 있는 저의가 수상하다고 느껴졌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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