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심지훈의 보통글밥 ] 대장내시경기(記)②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1.01 16:5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거사(?)를 하루 앞두고 큰아들 라온이는 귀신같이 아빠의 심정을 알아차렸다. 10월 9일 밤, 오후 7시 30분에 꿈나라에 들었다. 천방지축 바론이는 엄마의 차지가 됐다. 일을 치르기 위해 10일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레디프리산을 제조했다. 오전 6시~6시 30분 사이에 레디프리산을 탄 약물 500㎖를 연거푸 두 번 마신 뒤, 맹물 500㎖를 마실 계획이었다.(이걸 오전 9시~9시 30분 사이 한번 더 해야 했다. 검진은 오후 1시.) 라온이가 귀신같이 깨서 따라나왔다. 

그때 김천 할아버지 이야기를 좀 들려주었다.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듯 라온이도 제 아빠가 대장내시경하려고 전날 밥을 두 끼 굶고, 이튿날 새벽 약을 먹는 모습을 기억하리라. 라온이가 물었다. 

“아빠 이걸 먹으면 어떻게 돼?”

“응. 이걸 먹으면 아빠 뱃속에 있는 똥이 슝슝 다 나오는 거야. 그래야 검사를 받을 수 있거든.”

“라온이 똥꼬 알지?” 

“하하하하. 똥꼬?”

“응. 거기로 이 새끼손가락만한 막대를 쑥 집어넣어. 이 봐봐. 이 수전 같은 검정색인데, 실처럼 꼬불꼬불 돌아가면서 대장을 검사하지. 우리 대장은 (다리를 한 폭 벌리면서) 여기서 또 이 반만큼 긴데, 1.5m나 돼. 우리 뱃속에 이 길이만큼의 대장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들어있지. 우리가 밥을 먹잖아. 그러면 위장을 거쳐 소장, 대장으로 내려와. 그러면 위장에서 음식을 막 녹여 그리고 소장에 오면 영양분을 흡수하고, 나머지 찌꺼기가 대장으로 내려와 똥이 되는 거야. 그런데 나이가 들면 위장, 대장 기능이 나빠져. 뭐든 오래 쓰면 낡잖아? 그런 것과 같아. 그래서 아빠 나이가 되면 한번씩 검사를 해서 건강한지를 확인하는 거야. 라온이도 아빠 나이가 되면 (시늉하며) 똥꼬에 실막대를 팍 찔러서 대장내시경을 받을 거야. 하긴 너가 아빠 나이가 되면 이런 물약도 필요 없고, 알약 하나면 굳이 검정막대 같은 걸 똥꼬에 찔러넣을 일도 없겠다.”

“하하하하. 똥꼬, 똥꼬, 똥꼬.”

애들은 ‘똥’ ‘똥꼬’ 두 단어면 뿔이 났대도 금방 웃음짓게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똥’이야말로 명약이 아닐는지. 

내 대장내시경 결과는(악성여부는 2주 뒤에 알 수 있지만) 육안으로만 봐도 충격 그 자체였다. 용종만 12개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중 6개를 제거했다. 의사는 “한번에 최대 6개만 제거할 수 있다”며 “내년 봄쯤 나머지를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주었다. 내 육신의 건강함을 과학적으로 검증받고자 한 검사에서 내 미신 같은 과신이 아주 허무맹랑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갑자기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이 샘솟았다. 의사도 “대장내시경 하시길 잘했다”고 했다.

나는 평소 짧은 기자생활 경험을 통해 가급적 멀리해야 할 곳으로 3곳을 꼽는다. 병원, 경찰서(경찰청), 법원(검찰청). 대전 도심의 한가운데 살아 이 세 곳이 즐비하지만, 내가 집을 살 때 가급적 이 세 곳과는 먼 곳을 점지한 것도 땅이 품은 지기(地氣) 때문이었다. 

건강을 과신했던 나는 당장 아내에게도 대장내시경을 권했고, 형·누나에게도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이 글을 보게 될 형수도 예외가 아니다. 우린 아직 살아갈 날이 많기에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기본칙을 준수해야 옳다.

나는 20~30대 애주파에서 폭음파를 두루 거쳐 40대 절주파에 잠시 머물다 금세 금주파로 이적했다. 이적(移籍)은 이직(移職)처럼 현대사회에서 죄(罪)라 할 수 없다. 하물며 아이들과 아내를 위한 금주라면 박수받아 마땅하리라.

/심보통 2023.10.11.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