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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1.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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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에어포켓(4)

음악다방 마담을 직접 본 건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이명구회장의 상반신 조각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표현봉 조각가의 손길은 바빠져 있었다. 이미지와 윤곽으로 각을 잡던 조각칼은 어느새 작고 소소한 세부사항에 주안점을 두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주름살에서 부터, 밝은 피부 톤과 어두운 피부 톤의 대비에서 오는 이미지 개선까지 그만큼 늙은 한사람을 예술가로 수직상승 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예민한 분위기속에 신경질이 쉽게 터져 나올 것을 감안하여 눈치껏 정리정돈하면서, 필요한 조각칼을 가까운 곳에 재깍재깍 날라다 주었다. 

섬세한 선을 따고 싶을 때 세모칼, 굵고 넓은 선을 따고 싶을 때 둥근칼, 세부적이며 가는 선을 따고 싶을 때 창칼, 우툴두툴한 질감을 따고 싶을 때 납작칼 등등은 저마다 쓰임새가 달라서 조각의 수준을 격상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행동반경에 장애를 주는 조각부스러기도, 치고 빠지기를 거듭하며 걸림돌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뱃살이 빠진 듯 날렵해졌다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표현봉은 뚫어져라 쳐다본 이명구회장의 흑백사진을 작업방향에 몇 번 옮겨놓으면서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참, 내가 오늘 손님이 온다고 하던가?”

“그런 말씀 없었습니다.”

“지금 몇 시인가? 세시쯤 옆집에서 마담이 올 거야.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지. 영백호, 자네가 신중을 기해줘. 작품에 도전할 모델을 제안했거든.”

내심 궁금하긴 했었다. 

언제나 날을 세우며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 조각가의 감성과 열정에 닿은 한사람의 분위기와 맞닥뜨리고 싶었다. 내가 보는 평가에서 많이 벗어난, 알이 찬 개성과 독특함을 온전히 기대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세시였다. 노크소리가 들렸다. 한걸음에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거기, 고요하고 맑은 한사람이 서있었다. 기쁨과 두려움과 슬픔과 성냄과 요염을 동시에 장착한, 보기 드문 색깔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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