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 고 ] 산남의진열전(山南義陣列傳) 126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0.25 16:5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충래

전원생활체험학교장

본보 논설주간 

손영각(孫永珏) 의사 약력

손영각은 자(字)는 내숙(迺叔)이요, 호는 락산(樂山)이며 관향은 월성(月城)이오, 신라 대수부(大樹部)의 후예라. 역대 세덕은 본집 가상(家狀)이 첨부되었기로 생략한다. 부친의 휘(諱)는 종건(鍾健)이오 자(字)는 치원(致源)이며 모친은 여주이씨 휘 진혁(眞赫)의 따님이라. 고종 을미(乙未:1895)년에 경주부 강동리제에서 공을 출생하다. 성품이 충후하고 기운이 건장하고 용모가 비범하였으며 특별한 행동은 부모에 효성이 특수하고 형제에 우애가 돈독하여 인근에 칭찬이 있었다.

학문은 가정환경에 따라서 충분한 공부를 못하였고 자력자습으로 해득되어 충신열사전과 병서 등속을 많이 보고 항상 사상이 남달라서 구구한 생산 작업에 전신을 쓰지 않았다. 

그때에 나라운수가 나리 갈수록 더욱 소란하게 되어 병인양요(丙寅洋擾)로부터로 시작한 난리가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신정변(甲申政變), 갑오(甲午)동란, 을미(乙未)시역, 아관파천(俄館播遷) 등의 갖은 파란을 겪고 청일전쟁(淸日戰爭), 노일전쟁(露日戰爭) 등의 남의 시비에 신경이 마비된 우리나라는 항구 몇 곳에 강제조항으로 국제개항장이 되고 국토 중심에 외국 사람의 철도가 관통되니 이런 혼란을 당할 때마다 국내의 민심은 격동되고 애국지사들은 죽음을 생각지 않고 설분하기를 맹서할 그때라.

공은 동지를 찾아서 여러 곳을 방황하다가 자양 북부요, 죽장 남단인 답곡이란 동리에 주거를 정하였다. 그 인근지대는 애국지사들이 항상 집답되는 곳이라. 저명한 인사로 단오공 정용기. 지포공 이한구, 검와공 정순기 등이 있어 그들을 추종하는 지사가 많았다. 공은 이곳에거 모든 동지와 더불어 주야로 자리를 같이하여 시국을 탄식하고 구제할 모책을 강구하였다.

엄동설한이 되면 만산초목이 모두 낙엽되고 송죽의 절개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을사늑약을 강제로 당하고 이 나라 모든 국권은 송두리째 상실되었으니 의기가 있는 그분들은 결사항쟁을 시작키로 하였다.

이때에 단오공이 서울서 돌아왔는데 그 목적은 그의 부친 시종신 동엄선생 정환직의 명령으로서 광무황제의 밀조를 받들고 의병을 일으켜서 왜적을 격퇴코자 계책을 정하고 영남에 내려와서 의병을 모집하여 서울에 올라가고자 준비를 모책하는지라.

공은 이 기회가 벌써부터 기대하던 바이고 울분한 기운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아우 영준(永濬)과 같이 남먼저 가담하여 대소사간에 험난을 가리지 않고 협력하여 증모정도가 다 되매 병오년에 행진을 시작할 때 진호를 산남의진이라 정하고 부서를 조직함에 있어 단오공을 대장에, 지포공을 중군장에, 공을 참모장에, 검와공을 소모장에 여러 사람들의 추대로 결정되고 기타의 각 부의 책임자를 지명하여 열읍을 경유하여 서울로 길을 취하다가 적의 간계에 기만을 당하여 대장 단오공이 대구에 체수되고 중군장 지포공이 청진 지방에 주둔할 때에 공은 중상을 입고수개월간 치료하였다. 정미년에 진을 다시 정돈하여 전투를 계속하매 그 모집한 경과와 전투 계항은 산남진사 강령에 있기로 차에 생략하고, 단 임종시 그때의 일을 대략 기록한다. 그해 8월 자양에서 영천읍에 주둔하는 적이 자양에 침입한 것을 격파하고 적장 겸절원일(兼折元一)의 머리를 깃대에 달고 지방 주민의 환영을 받았다. 그때 군중에서 영천읍을 진격하자는 의론이 회부되고 또 내막에 있어서는 난처한 사정이 있는지라. 왜냐하면 군중에 탄약이 핍절되고 또 한 가지 중대한 사정은 동엄선생이 서울에서 내려와 전군을 북상시키도록 시간을 독촉한다. 그 이유는 왕년 을사년 납월에 선생이 그의 아들 단오공을영남으로 보낼 때 약속하기를 서울과 영남의 양진이 강원도 강릉에서 합세하여 서울에 들어가서 임금 곁에 있는 악마를 먼저 숙청하고 격서를 천하에 띄우자 하였더니 뜻밖에 치열한 격전이 영남에 벌어져서 차츰 적들은 많아지고 우리는 적어지는 그 입장이 되는지라. 부득이 서울에 준비되었던 군인과 무기를 모두 영남으로 보내고 서울에서 영남의 북상을 기다리다가 서울 사태가 점점 위급하게 되므로 할수없이 진중에 돌아와서 나라 형편이 급박하게 된 것을 말씀하시고 즉일 내로 의진을 북상시키고자하니 이 의론이 참모부에 건의되어 영남에 전투를 중지하고 북상할 준비를 시작하니 제일 중요한 문제는 가을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천리 먼 길에 군복을 환착시켜야 되고 또는 탄약이 핍절됐는지라 이 때문에 공이 참모결정자로서 연천 진격을 중지하고 북상하기를 선언하여 각 부대를 각지로 파견하여 약탄과 군복을 준비하고 각자 유격대에 북상을 지도하도록 지시하다.                               (계속)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