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심보통의보통글밥 ] 대장내시경기(記)①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10.25 16:4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 지 훈

(경북 김천, 1979.7.8~) 

원래는 ‘건강검진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대장내시경은 건강검진의 일부니까. 하지만 나는 ‘대장내시경기’를 짓기로 했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실로 여러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아내의 권유가 있었다. 

“여보, 요즘에는 오십(쉰) 전에 한번씩 받아본대요. 당신도 이번에 대장내시경을 받아봐요.” 

“아니야. 난 올해부터는 아예 건강검진을 받지 않을 작정인데.” 

“왜요?”

“위는 염증이 있은 지 4~5년이고, 나머지는 아직 나이가 젊고 건강한데 뭐하러 굳이 받아. 위는 한번 고장나면 어지간해선 잘 낫지도 않고 요즘은 절주(節酒)하고 소식(小食)도 하니까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악화되지는 않겠지.”

 아내는 고집쟁이 남편에게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던 주말 이른 아침, 당근마켓으로 예약한 책을 찾으러 가는 길에 건강검진관리협회(이하 협회) 앞을 지나게 됐다. ‘건강검진을 받자’라는 생각이 돌연 솟구쳤다. ‘받는 김에 대장내시경도 받아보자.’

책을 찾아와서 괜스레 좋은 일이 생긴 양 달뜬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 나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어. 협회를 지나면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 

 

 

“잘했어요.”

당초 9월 13일에 검진을 받기로 하고, 협회를 찾아 대장을 비우는 관장약 ‘레디프리산’을 9,600원 주고 사왔다. 라온이에 이어 바론이가 ‘아데노 바이스러’에 감염돼 1주일간 움직일 수 없었다. 10월 10일로 예약을 변경했다.

위내시경 등 기본검사 말고 대장내시경은 은근 신경이 쓰였다.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내 생각으로는) 건강한데도 확인을 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현실에서 나는, ‘나도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는 감상에 젖어들었다. 레디프리산 종이가방을 주방에 올려놓고 주방창 메타세쿼이아숲을 쳐다보면서 저 푸른 나무들처럼 나도 서서히 익어가는 것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생전 내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대전방송(TJB)이 개국할 때, 개국방송 대본을 써준 인연으로 TJB 사주였던 대전 선병원 선대회장과 막역한 인연이 있어 내내 대전 선병원과 선치과를 이용하셨다. 아버지는 위수술도, 심장수술도, 임플란트도 모두 선병원에서 하셨다.(선병원 선대회장과의 인연으로 개국방송 대본작업을 맡으셨는지, 개국방송 대본을 써준 인연으로 선병원 선대회장과 깊은 인연이 닿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전자일수도 있겠다 싶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대장내시경을 선병원에서 받으셨다. 전날밤에 관장약을 드시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새마을호를 타고 어머니를 대동한 채 선병원을 다녀오셨다. 해가 곧 떨어질 무렵 집으로 오셨으니 꼬박 하루를 고생하셨던 기억이 있다. 점심은 대전역에서 죽을 사드셨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대장내시경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얼추 13~4년은 늦었던 것으로 셈이 되는데, 어느덧 나도 아버지와 같은 삶의 과정을 밟아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버지답지 않게 기진맥진한, 좀은 엉클어진 그때의 모습이 어렴풋이 다가왔다.

나는 두 아들 덕분에 추석을 지내고 대장내시경을 받게되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아버지 차례상에 올린 막걸리를 음복(飮福)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다. 대장부의 주도(酒道)라는 것이 애주(愛酒) 다음 폭음(暴飮)을 즐기다 치닫다가 어느새 절주(節酒)로 돌아서 금주(禁酒)로 끝을 보는 게 아니겠는가. 해서 원도혁 선배님(전 영남일보 논설위원)은 사회부장 시절 팔팔하던 이십대인 내게 막걸리를 푸짐하게 사주면서 이렇게 한 가르침 주셨던 게다. 

“야, 심지후이 너 사망이 뭔줄 아나?”

“죽는 것 아닙니까.”

“흐흐흐흐. 잘 들어보래이. 남자에게 사망이란 여자 끊고, 담배 끊고, 술 끊고, 마지막으로 곡기 끊으면 그게 곧 사망인 거라.”

이 얼마나 촌철 같은 명언인가. 여자를 끊지 않고, 담배를 끊지 않고, 술을 끊지 않고, 곡기를 끊지 않는 생(生)의 수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내는 곧 졸장부란 뜻이겠다.

나는 이번 대장내시경을 기회로 절주파에서 금주파로 날름 이직했다. 변절이라 해도 어찌할 수 없다. 내 금쪽같은 두 아들은 이제 고작 6세, 3세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지만 노력하면 지성감천(至誠感天)이겠다. 늦깎이 아빠에게 금주는 필수다.                             (계속)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