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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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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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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에어포켓(3)

표현봉 조각가의 작업실은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음악다방과 나란하게 붙어있다. 칠십 평 집세가 부담스러워 분할임대로 나란하게 이웃이 되었다. 방음시설이 구비된 벽으로 차단했다고 하지만 쏠쏠하게 음악소리가 작업실로 새어나왔다. 작업에 거슬린다며, 예민한 표현봉은 처음에 즉각적으로 다방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를 맞이한 마담을 본 뒤 모든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꼭 한번 조각에 도전하고 싶은 분위기와 몸매와 눈매를 가진 마담을 보고 깎은 배처럼 순해졌다고 했다. 

첫날 출근한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명하다. 내가 음악다방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니 절대 마찰이 없기를 당부한다는 뜻일 게다. 나는 충분히 받아들인다는 긍정의 의사표시로 목청껏 대답해주었다. 표현봉은 덩치에 비해 반듯하게 임하려는 몸가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가에 주름살을 잡으며 웃어주었다. 누가 봐도 알아보는 재벌회장의 상반신 조각 앞에서 어깨선을 쓸어내리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얼마 전 의뢰받은 조각상이지. 조각의 소재는 그때그때마다 다르지만 돌, 나무, 흙, 얼음, 금속, 유리등 여러 가지를 재료로 해서 작품이 만들어지지. 조각을 기본으로 하여 깎고 붙이고 용접하고 부수는 수법을 사용하지. 이분 누구신지 아는가?”

“아성그룹 이명구회장님이신 것 같습니다.”

“안 좋은 버릇! 이신 것 같다는 말은 조각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이미 조각을 시작하며 그 사람의 습관과 몸짓과 음성까지 조각 속에 넣으려는 엄청난 각고의 노력이 깃들여져 있다고 보면 돼. 다음부터는 보이는 그대로 호명해주면 좋겠어. 명심해!” 

머리를 긁적이며 어깨까지 숙였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저런 자존감과 신뢰감이 없다면 어떻게 조각이 가능하겠는가. 조각 보조도 중요하지만 하루에 두 번 커피대령이 주 업무였다. 원두는 케냐 키리냐가 SL28로 항시 확보되어 있어야 하며 구매에 차질 없이하라는 당부도 받았다. 커피머신에서 생두에 열을 가하여 볶는 로스팅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통념이다. 

이미 입력된, 보통 약하게 볶아 신맛이 강한 원두를 적절히 분쇄하여 캡슐화 함으로써 원두를 담는 도징과 적당히 다지는 탬핑의 과정을 생략하고 항상 균일한 맛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바리스타가 아니라도 가능했다. 작동방법은 단순해서 눈썰미만 있으면 커피를 뽑을 수 있었다. 

색은 진하지 않았고 향도 은은했다. 작업대에 커피 잔이 올려있기 좋게 홈이 파져있었다. 커피를 올려놓으며 힐끗 표현봉의 눈치를 살폈다. 근육이 여실히 드러난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조각칼에서 뭉텅뭉텅 재료가 벗겨졌다. 보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웅크리고 있던 내안에서 조각의 생명이 꼼지락거리는 것은 아닐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반란처럼 내안은 이렇게 아득하고, 이렇게 뜨거워지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잠시 휴식할 겸 건물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종이컵을 감싸 쥔 채 혀끝으로 음미하듯 마셨다. 향은 고급 원두에 길들여지고 맛은 싸구려 커피에 젖어드는 자신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다지 억울해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은둔형 외톨이로 서서히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 침몰하고 있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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