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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 ] 영양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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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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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진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옛 지리지의 서문

 

고을에 지리지(地理志)를 둠은 우공(禹貢)39)으로부터 비롯되어 주(周)나라의 관직과 지방제도(職方)를 정한 주관(周官)40)을 거쳐 한나라의 역사(漢史)를 기록한 열전(列傳)41)의 예와 같이 모두 그 가운데 의미를 붙였으니, 〔이는 모두〕 정치의 좋고 그름과 민속을 숭상함에 있어 순박함과 허물의 여부를 살피고자 하는 것으로, 이것이 예전부터 고을을 다스리는 자들이 반드시 지리지를 닦음에 뜻을 두는 까닭(所以)이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고 사람이 바뀜에도 이를 계속하여 증보(增補)하지 못한다면 한 고을의 문헌이 백세로부터 멀어져 더 이상 증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임자년42) 가을 나는 봉성(鳳城)43)으로부터 영천으로 옮겨온 지 3년 후에 신녕을 합하여 다스렸는데, 두 고을44)의 장고(掌故)45)에서 지리지를 얻어 읽었더니, 이는 80년 전의 옛 기록인데다 오랜 세월이 지나 군데군데 없어지고 남은 글(잔편殘編)46)과 끊어진 문장들(단간斷簡)47)이 연기에 그을리고 좀 벌레가 먹어 도저히 제대로 볼 수가 없었으며, 하물며 지금 시대에 병합된 연혁을 찾아보았지만 그 증거로 삼을 만한 것들이 없음에 리오?

이에 드디어 옛 기록을 취하고, 그 조례(條例)에 따라 신녕의 고사(故事)를 합하여 그 인물과 당시의 정세로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당시의 문헌과 문물로서 보탤 것은 보태며, 옛 자취 중 뺄 것은 빼는 등 간략히 하여, 〔두 고을이 합쳐져〕 변경한 이래로부터 관직(官職)의 폐지와 설치(廢置)48), 마을의 분리와 합병(離合)49) 등 제반 사실을 따로 새롭게 보완한 한 편(일편一編)을 새로 만들어 그 뒤에 붙인 뒤, 이 모두를 합하여 목록을 만들고 책 끝에다 도면(圖面)을 붙여, 살피고 보는데 편리함을 기하였다. 〔이렇게 해서〕 잘못을 바로잡아 다시 책을 만든(선사繕寫) 후로는 고을의 고금(古今) 연혁으로서 큰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상세한 것이든 간략한 것이든(거세상략巨細詳略)50) 모두 온전히 하여 한번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가히 훗날을 대비한 훌륭한 역사적 기록(돈사惇史)이라 하겠다. 

아! 내가 수재록(守宰錄)51)을 보았더니 고려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700년 사이에 이 고을의 수령을 지낸 사람이 무릇 322명으로서, 〔이 중에는〕 이름난 공직자와 큰 벼슬에 이른 이들(명공거경名公鉅卿)이 많았지만, 그들이 선량한 벼슬아치였던 탐관오리였던 그 남긴 치적의 아름답거나 모진 자취의 대략이 결국에는 사임, 교체, 파면, 축출(사체파출 辭遞罷黜)52)의 모습으로 〔지리지 地理誌〕의 현주(懸註)53)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돌아다보면 재주 없는 사람54)이 여러 선임자들55)의 뒤를 이어 지난 80여 년 동안 경황이 없어 돌보지 않았던 일을 보완하고 가다듬는(증수增修)56) 임무를 맡게 된 것을 지리지와 더불어 다행이라 여기고, 이 책 가운데에 재차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바를 글로 써서 서문으로 삼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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