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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08.0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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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213미터 상공(7)

TV 뒤에 주민센터에서 찾아온 돈을 두었습니다. 장미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던졌습니다. 

“울 집에서 가장 값나가는 티비 곁이라면 한 바구니에 담는 위험성이 있는데, 오빠 괜찮을까요?” 

“안 괜찮으면? 임시로 둔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뭘 보관이나 소유를 해본 적이 있어야 알죠. 특히 돈은...얼마라고 했죠. 아, 칠백이십 사 만원.”

회전기능으로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를 정지에 두고 롱쿠션 베개를 반으로 접어, 세상 편하게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채널이 돌리는 장미에게 ‘잠깐’이라 외쳤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에 놀라는 표정보다 신통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장미의 손에서 낚아 챈 리모컨으로 조금 전 눈에 꽂힌 장면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눌렀습니다. 내가 찾으려고 했던 장면은 어느 뉴스채널이었습니다. 

‘213m 상공에서 여객기 비상문을 연 혐의로 체포된 30대 이 모 씨. 비행기는 다행히 무사히 착륙했지만, 200명이 타고 있었던 만큼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직장을 잃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비행기가 답답해 빨리 내리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실제로 이 씨는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열린 비상문으로 내리려는 행동도 한 거로 파악됐습니다. 이 씨의 돌발 행동을 제압한 건 근처에 앉았던 승객들과 승무원이었습니다.’

겁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가급적 담담하게 전해주는 단발머리 앵커의 목소리와 모자와 헤드셋이 바람에 날아가는 승객들의 공포가 가감없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장미도 놀랐는지 한 팔로 비스듬히 일어났습니다. 반으로 접혀져있던 롱쿠션 베개도 비스듬히 일어나 제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이제야 알겠네요.”

심각하게 보고 있는 내 옆구리를 장미가 찔렀습니다. 외부자극이 가해지면 겨드랑이와 옆구리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지금은 동요가 일지 않았습니다. 

“다락방 동네 사람들은 213미터 상공에서 매일 문이 열린 채로 비행하고 있는데 왜 모두들 무표정일까요?”

이번에는 장미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빤히 쳐다봤습니다. 

 

“처음에는 공포에 소리를 질렀겠지요. 메아리도 없는 공허한 외침에 몇은 목이 쉬었고 몇은 체념한 채로 시들해졌겠죠. 아무도 우리를 이곳으로 몰아넣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모여 사는 방법 아닌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요.”

장미가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습니다. 귓불에 더운 입김으로 휘파람을 불다가 혀를 둥글게 말아 귀를 자극해 주었습니다. 순둥이처럼 구석에 박혀있던 남자가 ‘저요’를 외치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섭니다. 조련사 장미가 뿌듯해합니다.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었고 213미터 상공에서 문이 열린 채로 삽입에 성공 했습니다. 적막과 고요와 우울과 절망이 두텁게 뿌리를 내린 이곳에도 따글따글 몸 섞는 소리가 들립니다. 결코 미래를 예약하지 않아도 답답해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만 접어면 됩니다. 다락방 동네도 떼죽음을 당하는 곳이 아니라 조용히 번식을 위해 씨앗을 떨어뜨리는 곳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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