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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 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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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7 15:47
  • 수정 2023.05.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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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육교(8)

“신상이 공개될 우려 때문에 확인되지 않는 분에게, 함부로 성함이나 전화번호를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직접 오셔서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주십시오.”

경찰관 말에 의기소침해져 통화를 끝냈습니다. 아무튼 아내의 정의감 덕분에 루트 바 가운데 차 지붕이 찌그린 채로 다시 일상에 젖어 들어갔습니다. 미경이라는 궁금증도 많이 옅어진 어느 봄날, 초여름처럼 더웠던 퇴근 시간에 시원한 캔 맥주를 떠올렸습니다. 묶음으로 된 캔을 사기위해 집근처 마트에 들렸습니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주차장 벤치에 앉아 졸리기도 했지만 무심하게 던진 서쪽 하늘은 장관이었습니다. 노을을 품은 하늘은 만개한 꽃들의 아우성 같았습니다. 

 

저토록 온몸으로 삶을 노래하는 독한 노을을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며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존재의 충만한 가치를 드높여줄 세상은 저렇게 펼쳐져 있는데 말입니다. 오래오래 속을 비워둔 채, 껍데기로 살아 온 자책감이 한없이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노을이 스친 강물도 주차장 너머에서 넘실거렸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며 땅거미 진 시간에 맞게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낮과 밤을 잇는 피돌기를 할 모양으로 갖춰지고, 제자리를 찾고, 품는 것이 마냥 눈이 부셨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둠의 모양새를 읽을 때 마다 그전에 몰랐던 또렷한 형체가 반짝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일에 파묻혀 살아왔는지 반성합니다. 그때 낯선 전화가 울렸습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낯선 전화는 보이스피싱이다’는 아내 세뇌에도 왠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편 노을이 가벼움으로 흔들, 끝 무렵이었습니다. 전화기 저쪽은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저, 육교에서 떨어진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버벅거렸습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다고 하셨습니까? 혹시 전화를 잘못 거신 건 아니겠죠?”

전화기 저쪽은 더욱 침착한 목소리로 기억을 떠올려주었습니다. 

“선생님 내외분께서 저를 살리려고 육교 밑으로 차를 받쳐주셨기에 경미한 타박상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날, 차도 틀림없이 망가졌을 텐데 아무 말씀이 없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차넘버로 조회하여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 제 집에 들려주시면 꼭 사례를 하고 싶습니다.” 

 주소를 받아 적었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오래 멈추지 않을 묘한 전율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발정 난 수캐로 마산만 부둣가를 헤매던 치기를 멈추게 해준 미경이라면, 내가 사례를 해줘야 당연합니다. 아내에게 당분간 비밀로 해두고 싶었습니다. 아니 미경이가 아니라면 즉시 이야기해야겠지요. 미경이라면 이번 생에 알게 모르게 이어진 연결고리를 다음 생에 넘겨주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결말로 힘들어하더라도 결코 놓고 싶지 않는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싶습니다.
이튿날, 사례금에 꽂힌 것처럼 서둘러 방문전화를 했습니다. 여자는 흔쾌히 허락을 했고 오부장 장모 장례식 핑계를 대고 여자가 사는 아파트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파트 차단기 앞에서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칠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더욱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기도 했습니다. 여자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며 발을 딛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두근거리는 가슴은 요동쳤습니다. 문이 열리고 여자와 얼굴을 맞닥뜨렸을 때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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