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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호모 모빌리쿠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05.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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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식 편집국장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는 휴대폰을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며 생활의 일부가 된 현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말한다. 휴대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니 막강 파워에 포섭된 듯한 느낌이다. 이제 휴대폰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고 아카이빙하는 자아 대체수단으로 자리 잡았기에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됐다. 휴대폰의 대중화로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의 미학을 잃고, 진정한 의사소통의 핵심인 ‘이해’와 거리가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휴대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앱으로 날씨를 체크하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한다. SNS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리하다. 물건을 사고, 휴대폰 지문인증으로 결제하고, 취향에 맞는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지인과 카톡을 주고받고, 너무나 간편하게 계좌이체가 가능하다. 말 그대로 휴대폰과 삶이 하나다. 휴대폰을 제2의 뇌라고 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우리는 과거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였고, 합리적 경제생활을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조금은 기다릴 줄 알았고, 궁금함이 있어도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휴대폰과 함께 하면서 호모 모빌리쿠스가 돼버렸다. 

 

넷플릭스에 개봉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휴대폰을 실수로 분실했다가 찾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시작은 20대 여성이 술에 취해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자기 손에서 놓친다. 문제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연쇄 살인마가 복제해 분석하고 여성의 일상에서 그의 주변인들을 잘라낸다. 

스파이앱을 심어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의 삶 또는 일상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 내 정보는 물론 가족과 친구 관계까지 탈탈 털려 예상치 못한 범죄에 노출되는 잔혹한 지능범죄가 문명화 수준과 깊숙이 관여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는 우리 생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여서 더 아찔하고 씁쓸하다. 분명 공포 그 자체다. 누군가 내 휴대폰의 카메라를 통해 나를 관찰하고, 나의 통화내용을 엿듣고, 나인척하며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떨까. 내가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며, 사람 간의 신뢰까지 건드리는 민감한 내용이라면 일상의 파괴뿐 아니라 나를 충분히 고립시킬 수 있는 섬뜩한 결과가 나타날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주인공처럼 대개의 현대인들이 호모 모빌리쿠스가 되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않고 신체의 일부처럼 생각한다. 하루의 일상을 포함해 금융기록이나 각종 비밀번호, 인간관계, 쇼핑, 취향 등 모든 것이 휴대폰에 담겨있다. 

 

최근 정치권의 민주당 돈봉투 사건만 봐도 모든 것이 휴대폰에서 쏟아진다. 법조계에선 영화처럼 휴대폰만 가지면 사실상 모든 개인정보가 공개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단다. 통화내역은 기본이고 문자 메시지에 상품구매 내역, 검색기록 등 모든 것이 휴대폰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휴대폰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 또는 인생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중독이나 노예라는 표현을 넘어 휴대폰 생을 사는 셈이다. 그것을 이용해 더 많은 기회를 잡고, 더 많은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야만인이 되어감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삶은 진정한 의미에서 스마트한 삶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면서 시대적 흐름이나 생활방식을 거스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떤 것으로 인해 나의 인생을 포기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자, 그러면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손 안의 신무기처럼 다루는 휴대폰이지만 한번쯤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랫동안 방치해온 나를 다시 찾는 방법. 예전의 한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이런 말조차도 벽이요, 차단이며 부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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