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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02.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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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욕조(7)

미주는 샤워기보다 찰랑거리는 욕조를 선호했다. 그렇다고 오래 씻는 건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욕조에 물을 받아 온몸을 맡겼다. 물 부족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부적격이지만 매력발산의 도화선을 지핀 데는 적격이었다. 상상해보라. 미끈한 몸매로 꽉 찬 욕조 안에서 약간의 뒤틀림으로 중요부위를 가리는 센스를. 그리고 게슴츠레한 눈매에 벌어진 입술과 정복해야할 봉우리처럼 솟아있는 가슴과 엉덩이를. 언제든지 받아들일 듯, 거부할 듯 종잡을 수 없는 새침한 벌거숭이를.

욕조는 미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침묵하고 있던 욕조가 미주의 몸을 담는 그 순간부터 따따부따 말이 많아진 듯 찰랑거리고 출렁거렸다. 욕조 안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미주의 버릇이기도 했지만 촉수 하나하나에 간지럼을 먹는, 엑스타시적인 요소를 제공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황홀하고 흥분되고 욕조가 주는 쾌감에 젖어 들어가는 몰입감은 보는 내내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결코 미주가 깨우친 유희의 진정성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기다려주었다. 욕실 유리에 비친 실루엣을 통해 상상할 뿐이다. 자신의 세계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미주의 선언으로 곤두박질치는 심장을 달래며 기다려주는 신사적 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루엣은 여러 가지를 담아내주었다. 온전하게 욕실 안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라 부각된 가슴을 흔들며 요가를 하는지 팔을 흔들거나 다리를 흔들어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었다. 허긴, 미주는 요가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굳이 욕실 안에서 발광할 필요성이 있을까 했지만 그렇게 해야만 지속성 있는 쾌감덩어리를 움켜잡을 수 있다고 했다. 

저런 일련의 동작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줄 달리기 끝에 일탈의 시간을 내게 할애하고 있다. 

미주는 욕실밖에 있는 내 시선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실루엣으로 비춰지는 자신의 판타스틱한 면을 제공하면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격상하고 싶은 계산도 깔려있을 것이다. 욕실에 길들여진 미주가 쉽게 놓을 수 없는 하나의 의식이 섹스의 첫 단계이기에 저토록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쉽고 편한 남자로 미주에게 각인되었다는 분명한 사실만 받아들이면 되었다.

목욕가운을 입고 나온 미주가 핸드폰을 검색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고쳐 물었다.  

“담배 그전에는 피웠나? 내 기억으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피우기로 했어. 평상시는 아니지만 욕실에서 걸어 나와 잠시 숨을 고를 때 담배는 꼭 필요할 것 같잖아.”

“그런가?”

“오빤 내 노예잖아. 감히 노예가 주인의 거룩한 행동에 토를 달다니, 무엄하다!”

본전도 찾지 못할 말로 심기를 건드렸기에 재빨리 꼬리를 감추고 욕실로 줄행랑쳤다. 미주는 내게 사랑 그이상의 복종을 하게끔 하였다. 그런 나를 먼저 파악한 미주에게 나는 노예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노예면 어떻고 껌 딱지면 어떠랴. 다른 남자와 결혼한 미주가 한 번씩 찾아주는 것만으로 내가 세상에 태어난 기쁨이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기 물줄기에서 꼼꼼하게 씻었다. 이번에는 미주가 실루엣에 비쳐지는 내 모습을 보고 새록새록 푸르지는 것은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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