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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 잘 쓰는 방법 1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02.0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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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지 훈 작가 

초등학교 국어시간에는 4가지의 중요성에 대해 배운다. 쓰기 읽기 듣기 말하기. 어쩌면 이것이 국어의 전부일지 모른다. 동시에 이것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다.  

이 넷을 조화롭게 활용하지 못하면 세상살기가 어렵다. 헌데 요즘 초등학교에선 이런 삶의 기본교육을 등한시하는 것 같다.  

내가 잠시 고향에 머물면서 영어학원 강사로 있을 때 그 심각성을 목도했다.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입들이 트였다. 본 것이 많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나 시쳇말로 ‘벌로’ 떠벌리는 아이들이 많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이 험악하다. 그 험악함에는 진정성은 없다. 다행일 수 있다. 바로잡을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말은 곧 습관이다. 일상적인 말은 그 말과 같은 행동을 낳는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사상(思想)이요, 인격의 반영이다. 말이 곱지 못하면 행동도 곱지 못하다. 뻔한 이치다. 

 

읽기도 도통한 듯 잘한다. 영문 읽기에도 도통한 그들이 국어 교과서쯤이야 장난하듯 읽어낸다. 조기교육의 결과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뗀다. 요즘은 4~5세면 한글을 떼는 것 같다. 한창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조카 녀석은 6세인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글을 늦게 깨쳤다고 하는 국문학자 누님 말을 들으니 그렇다 싶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휘력이 엄청나게 약하다. 형용사, 부사에 특히 약하다. 내가 영어 강사로 있으면서 내 어휘를 아이들에게 맞추느라 생고생을 한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내 어휘가 고급이 아니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데도,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 적이 여러 번이다.  

 

왜 그런가, 가만 생각해 봤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을 단순 ‘조합의 글자’로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 그것을 아이들은 읽어내면 그만이라는 식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저 경(經) 읽기에 함몰된 아이들이 천지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영문을 읽어내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초등 3~5년생의 영어 읽기 실력은 거의 네이티브(Native Speaker) 버금간다. 10명 내외의 한 반에 3~4명은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구사한다.  

 

그러니 혀가 굳은 영어 선생의 발음이 놀림의 대상이 된다. 그게 아이들이다. 아이들도 안다. 일선 교사들의 발음이 엉망진창이란 것을.  

하나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면 족하다.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다. 발음이 아닌 말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 아이들이 인지하기에는 교육현실이 너무 반대편에 있으니 하는 말이다.  

고로 읽기와 말하기 교육에 메스를 가해야 할 터이다.  

 

더 큰 문제는 쓰기에서 발견된다. 내 소박한 경험으로는 10명 내외의 학생 중 왼손잡이 학생이 평균 4명은 됐다. 중요한 표현은 입으로 되뇌게 하고, 손으로 열심히 쓰도록 했는데(외국어는 많이 뱉고, 써보는 것 외에 왕도가 없다) 초등학생들은 쓰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기껏 7~8 단어로 구성된 단문 10개를 쓰고도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들의 괴로움을 그저 응석으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진정성이 읽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쓰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확실히 왼손잡이가 널렸다는 점이다.  

 

창의력 향상을 위해 부모들이 왼손사용을 적극 장려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녀들이 글쓰기를 무척 힘들어한다는 것을 부모들은 알고 있을까.  

요즘 내게 ‘글은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나요’란 메시지가 곧잘 날아들어 그 이야기를 풀려다 사설이 길었다.  

 

그 답을 내놓기 전에 풀어야 할 썰(說)이기에 하는 말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할 것들은 초등학교 때 이미 다 배웠다.

듣기가 빠졌는데, 글 잘 쓰는 방법의 기본이 경청(傾聽)이자 경청(敬聽)이란 건 한 인간으로서 무르익어야 깨칠 수 있는 고도의 영역이다.

쓰기 읽기 말하기만 잘해도 글은 빼어나게 지을 수 있다. 여기에 듣기까지 간파한다면, 누구라도 명문(明文)을 낼 수 있다. 

 

이 이치는 반대로 생각하면 쉽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를 가졌다. 만약 입과 귀가 단거리시합을 한다면 입이 이길 것이다. 입은 날쌔기 때문이다. 장거리시합을 한다면 귀가 이길 것이다. 귀는 끈기가 있기 때문이다. 

 

글은 무릇 독자를 상정한다. 좋은 글은 입을 닫고 귀를 열 때 나온다. 타자의 입을 향해 두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심보통 2012.1.19 짓고 2023.1.29.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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