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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3.02.0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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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식 작가 

욕조(6)

가까이에서 본 청둥오리의 날갯짓은 거침이 없었다. 비상을 위해 펼친 날개를 접는 분주한 몸뚱어리가, 지상에 착륙을 시도했을 때 푸른 깃털이 날렸다. 생각했던 거보다 덩치가 크다고 미주가 속삭였다. 최대한 은폐된 웅덩이 안에서 수십 마리 청둥오리의 만찬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이 현실로 다가와서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경계심이 없는 먹이사냥으로 또각또각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넉넉하게 뿌려놓은 잡곡 쌀은 청둥오리의 밤톨만한 위장을 채워주고도 남을 것 같았다. 

 

한 쌍이 날아와 한 겨울 곡진한 먹이에 대해 그들만의 언어로 불러 모았을 게다. 덕분에 우리는 눈 호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몸을 낮추고 주변의 지형지물처럼 숨을 죽여 가며 지켜보는 전율은 가히 최상급이었다. 한 마리의 청둥오리가 먹이무더기를 발견하면 뒤뚱뒤뚱 따라 몰려가는 걸음걸이는 얼마나 찰리채플린 다운가. 요즘 도통 신바람 나는 일이 없었는데 웬 횡재냐는 눈빛으로 나를 건네 봤다. 그런 미주의 눈빛은 철부지 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신바람을 주선한 나는 자연스럽게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배가 부른 청둥오리 한 마리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목을 좌우로 흔들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먹이를 쪼아 먹던 오리들도 목을 빼서 우리 쪽으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다닥 날아오르는 비상의 화려한 날갯짓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헹가래치듯 수직으로 솟구치는 기적과 같은 생산적 그런 자유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태서 우리의 감동까지 끌어안고 날아갔다. 

 

하늘은 수십 마리 청둥오리의 비상을 품어주었다. 잠시 정지되었던 우리의 시간은 보상받기라도 하듯 하늘로, 하늘로 시선을 맡겼다. 미주는 반듯하게 누워 청둥오리가 잦아질 때까지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래도 순한 겨울바람이 공사장주변을 다녀가고 있었다. 

 

 

“혹시 놀라서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별 걱정을 다하시네. 먹이를 찾다가 먹이가 풍족한 이곳을 저 중 한 마리가 기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모여들겠지. 그때를 대비해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먹이를 놓아주면 되는 거고, 아마도 그들도 알거야. 위협을 느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미주의 얼굴에 착하고 선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잖아.”

“왜 이러셔. 오빠, 긴장을 풀었더니 춥네. 집으로 들어가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만 있다는 찬스로 딥키스를 했다. 미주가 끌어당긴 혀뿌리가 얼얼한 채로 아파트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간 미주를 두고 소파에 머리를 기대어 잠깐 졸았다. 꿈속에서 청둥오리의 공격을 받았다. 먹이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부리로 이곳저곳을 쪼아대는 공격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눈알을 파먹은 두 마리가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자 다른 오리들도 물러서 주었다. 눈알을 돌려달라고 소리친 것도 같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지만 조심스럽게 실눈을 뜨고 주위를 확인했다. 꿈이었고 참으로 다행이었다. 최근 들어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톱니가 맞물려 항상 돌아가는 시계바늘처럼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전제도 깔려있었다. 그 역할을 자처한 시계건전지가 만만하지 않는 세상과 한통속일지 모른다.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시간들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 미주를 내 욕조 속으로 옮겨놓았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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