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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연재] 고령신씨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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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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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삼 열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원 교수

풍수지리학 박사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만대산 8부 능선에 올라보면 고령신씨의 시조인 신성용(申成用)의 묘가 있다. 

고령신씨는 일찍이 가야의 호족으로 고령에 세거했으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신성용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그는 고려시대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으며 그의 가문은 800여 년 동안 고려와 조선의 조정에서 수많은 선비와 학자를 배출해낸 명문가족이다. 

 

시조의 5세손 신덕린(申德隣)이 고려 말에 예조와 공조판서에 이르렀고, 아들 신포시(申包翅)에 이어 손자 신장(申檣), 신평(申枰), 신제(申梯)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덕린의 맏아들 신장(申檣)은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올라 남산지곡을 짓고 오랫동안 대제학에 있었으며 둘째 아들 신평(申枰)은 사간원의 정언을 역임했고, 막내 신제(申梯)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특히 장손인 신장의 아들들은 5형제로써 맹주(孟舟), 중주(仲舟), 숙주(叔舟) ,송주(松舟), 말주(末舟) 모두가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그 중 셋째 신숙주(申叔舟)는 6대 왕조를 거치면서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라 조선조의 기반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세종의 한글창제와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7개 국어에 능통해 외교와 국방전략에 많은 공을 세웠고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와 보한재집(保閑齋集)등 여러 저서도 남겼다. 

 

근세인물로는 풍속화가로 유명한 신윤복(申潤福)과 사학자 신채호(申采浩)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등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해낸 것은 고령신씨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명당자손이란 말이 있다. 이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명당에 묻힌 사람의 후손이란 뜻으로 이곳 묘소가 위치한 만대산은 만대 동안이나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산으로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이곳은 서남쪽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의 김천 대덕산(1291m)에서 분기한 용맥이 동쪽으로 하나의 가지를 뻗어 수도산(1317m), 그리고 오도산(1120m), 토곡산(644m)을 지나 만대산(688m)에 이른다. 

 

묘소는 만대산 8부 능선의 높은 곳에 유좌묘향인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백호의 위세가 높다보니 그에 걸 맞는 천혈(天穴)을 택했고 만약 풍수원칙에 따라 산자락의 끝 지점인 용진처에 혈을 정했다면 압박을 받아 후손들에게 각종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산세다. 

 

목성형의 주산 아래에 입수가 분명하고 혈장에는 혈증인 귀성(鬼星)과 요성(曜星), 관성(官星)등의 삼성(三星)이 박혀있어 혈장의 생기를 더더욱 응축시켜준다. 백호자락은 본신용맥으로 혈장을 감싸 안으며 혈장 앞의 안산을 만들어 주고 안산 넘어 우측 을(乙)방의 조산은 그 모양이 둥근 금형산으로 마치 곡식을 쌓아둔 창고사와 같다. 

청룡자락은 그리 높지는 않으나 혈장 좌측 앞까지 뻗어 내려와 백호와 더불어 수구를 좁게 잘 관쇄해주고 있으며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다. 

 

이곳은 나름 혈증도 갖추어져 있고 장풍국(藏風局)을 이루어주니 풍수인들은 이 묘역을 조선 8대명당 중 하나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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