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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중시조 한란(韓蘭)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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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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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 중시조 한란(韓蘭)의 묘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 18번지에 가면 청주한씨 중시조 한란(853~916)의 묘가 있다. 한란은 고려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징벌하려고 그의 집을 거쳐 지날 때 집 앞의 우물물을 떠서 식수로 공급하고 함께 종군하는 등 삼한통합에 큰 공을 세워 삼중대광태위가 되고 개국벽상공신에 오른 인물이다.

원래 이 무덤은 조선 효종 10년(1659)에 파손된 것을 현종 4년(1663)에 개장하고, 숙종 16년(1690)에 묘역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매몰되었던 묘비와 상석을 찾아 세우고 개축할 때 세운 문인석과 용마석, 그리고 묘소 아래에는 영조 44년(1768)에 후손 한익모(韓翼慕)가 찬(撰)하여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이 묘소는 조선의 8대 명당으로 청주한씨 후예들은 이 묘소에 대해 큰 자부심과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묘소를 쓴 후 문중 발복이 끊이지 않아 조상들의 벼슬길이 탄탄했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문중은 조선왕조에서만 왕비 6명, 상신 12명, 공신 24명, 부마 4명, 대제학 1명, 문과 급제자는 무려 315명이나 배출했으니 이 모두가 중시조 한란의 묘소 음덕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도 총리, 부총리, 장관 등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는 명문가문이다. 청주한씨는 2000년 기준 70만 4365명의 인구로 우리나라 성씨 286성 중 12위에 올라 있으며 문중에서는 100만 한씨 문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곳의 풍수입지는 묘소 전후좌우의 사신사들이 유정하게 잘 감싸주어 장풍국(藏風局)을 이루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안온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안산 넘어 조산도 잘 펼쳐져 있고 묘소는 회룡고조혈로 용호사이로 뻗어 나온 중출맥의 끝자락인 용진처에 자리 잡아 지기가 충만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묘소 앞에는 혈장의 기운을 막아주는 전순(氈脣)이 볼록하여 마치 작은 독산 모양을 하고 있고 그 밑에 저수지가 있어 혈장에 많은 생기를 응기 시켜준다. 풍수서『地理五訣』에서도 혈 아래에 저수지가 있어 물이 고이면 이를 선저수(漩渚水)라하고 열 개의 무덤 중에 아홉 개는 부귀하고 집안에 곡식이 쌓인다 하였다. 수세는 좌선룡에 우선수로 합법하고 좌향은 건좌손향인 동남향으로 놓여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곳의 혈장이 기룡혈(騎龍穴)이라고 하나 필자의 식견으로는 기룡혈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기룡혈은 맥로가 2~3겹 상하로 겹쳐져 있는 경우로 상층맥은 혈을 맺고 하층맥은 계속 진행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곳의 혈장은 맥로가 끝나는 용진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용맥의 끝자락이 봉긋 솟아 있어 그곳에도 혈이 맺혀 있다고 보고 기룡혈로 판단한 것 같다. 기룡혈은 괴혈의 일종으로 일반인이 구분하기가 어렵고 만약 행룡 중간의 맥로에 혈증(입수, 전순, 좌우선익 등)이 분명하면서 중출맥보다 용

호의 길이가 짧다면 기룡혈일 가능성이 있다. 혈장주변 용호의 임무는 혈장을 호위하면서 보호하는 산으로 중간에 맺힌 기룡혈만 보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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