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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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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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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을 쓴다

야산(9)

여자의 죽음은 이틀 뒤에 구체화되어 전면에 드러났다. 하룻밤을 보낸 인연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 커졌을 거라 생각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렇게 총총히 떠나간 여자가 염려스러워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긴 했었다. 번개탄과 소주를 지니고 있는 여자가 충동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순간적일 것이다. 야산 주변과 읍내까지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뒤졌지만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하는 절차는 더더욱 주저하게 만들었다. ‘오지수’라는 이름밖에 모르는 완전 백지상태에서, 실행에 옮길지 모르는 자살을 신고하면 경찰들도 난감해 할 것이다. 

방송을 탄지 모르고 있었는데 이틀 뒤,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여객기 희생자중 한사람의 약혼자였는데 차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고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차는 어디에서 발견되었냐고 물었다. 만강읍을 벗어난 이웃 강기슭에서 차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신원조회를 한 결과 추락한 여객기 희생자와 관련성이 맞춰졌다고 했다. 듣는 내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토록 절절한 슬픔 덩어리가 목젖에 차오를 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머리를 박고 한동안 정지되어 있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이마에 통증을 느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몰아 만강읍 파출소로 찾아갔다. 어디에서부터 말머리를 뗄까 고민은 조금 되었지만 접수창구에 앉아있는 여경의 순한 눈매를 보고 용기를 냈다. 

“차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여자 분의 이름이 ‘오지수’ 맞습니까?”

이름 뒤에 존칭을 붙이려다가 더욱 친밀감을 주면 까다롭지 않는 절차가 된다는 얄팍한 계산을 염두에 두고 창구 앞에 선채 물었다. 

“사망자와 어떻게 되는 사이죠?”

“혹시나 해서 그럽니다. 아는 사이인데 연락이 되지 않아 그분이 그분인가 해서 찾아왔습니다.”

“분명한 관계를 알아야만 인적확인이 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불쌍한 표정에 다급한 목소리로 창구 앞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오지수가 맞는지 아닌지 이것만이라도 확인해주시죠.”

“이틀 전에 자살한 사망자의 이름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른 분입니다.”

발길을 돌려 파출소 쉼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구멍을 통해 한 오라기 없이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철저히 무력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나마 내게 가르쳐준 이름은 진실이기를 바랬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쉽게 멈추지 않을 심장박동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가짜 이름이 아닌 진짜 이름을 밝혀주면서 삶의 불씨를 여자는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자신의 갈 길을 방해하려는 사람에게 여타의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 묻지도 않는 가명을 밝히고 사라진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미 처음 마음먹은 수순에서 약간의 변동사항은 야산주변이 아닌 다른 곳을 장소를 옮겼을 뿐 여자의 결심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이승의 마지막 인연은 나였는데, 어쩌면 막을 수 있었는데. 내 한 몸과의 인연은 이토록 부질없고 보잘 것 없었단 말인가. 가짜이름을 품고 정복자처럼 잠든 내가 이제야 부끄러워진다. 화단에 심어진 침엽수가 찬바람에 더욱 푸르게 흔들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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