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심보통의 보통글밥] 8월이 오면

- 스토리텔링 작가, 시인
- 신협중앙회 원고 자문위원
-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석사)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2.08.10 17:56
  • 수정 2022.08.31 11:3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월에 대한 짙은 기억이 있다. 2013년 8월 8일의 일이었다. 수영 8년차 삼촌과 수영 8일차 조 카가 ‘수영’을 매개로 옥상에서 ‘수영 미팅’을 가졌다. 팔팔 끓는 여름 삼촌 과 나 사이엔 활활 타오르는 숯불이 놓여 있었다. 대개 우리 가족은 숯불에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감나무 아래 마당에서, 해가 넘어간 뒤에야 판을 벌였다. 이날은 달랐다. 삼촌의 수영 원 포 인트 레슨은 염천(炎天)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 강렬한 기억을 시 로 남겨 놓았다.

전국이 팔팔 끓은 8월 8일/ 수영 8년차 삼촌 과/ 수영 8일차 조카가/ 옥상에서 만났다// 삼겹살에/ 삼촌은 소주를/ 조카는 와인을/ 곁 들이며/ 도무지 뛰어넘을 수 없는/ 딴 차원의 이 야기를 주고받는다// 삼촌은 1레인/ 조카는 8레인/ 그 거리만큼의 간격은/ 별 초롱한 밤/ 마음의 태양을 팔팔 끓게 만든다// 마빡에선 연방 땀이 쭈르르 흐른다/ 삼겹살은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8월 8일은, 조야(朝 夜)가 팔팔 끓는 데이(day),/ 아따 더븐 데이, 피 곤한 데이….//(, ‘2013년 8월 8 일’ 전문)

이 시엔 토를 달았다. ‘기상청은 2013년 8월 8일 오늘, 울산 고사동 지역의 한낮 기온이 40도를 육박, 기상관측 이 래(1932년) 81년 만에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울진 37.8도, 경주 37.4도, 전주 36.8도, 대구 36.6도, 강릉 35.9도, 광주 35.7도 등으로 영동과 남부지방은 대부분 35도를 넘어 섰다. 이전 최고 기록은 1942년 8월 1일 대구의 40도였다.(YTN 참조)’ 문자로 가둔 기억은 각인이 쉽다. 해서 누군가 는 이 문자를 일러 ‘감옥(監獄)’이라고 했다. 좋은 날이든 나쁜 날이든 달력이나 메모장에 간단히 써 두면 오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8월이면 마빡에선 연신 땀 이 흐르고,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중에, 쉼 없는 일장연설 중인 삼촌 모습이 으레 떠올랐다. 어젯밤 [보통 글밥2] 교정2쇄를 보다가 이 기 억을 대체할 압권의 장면을 만났다. 2020년 8월 23일 태어난 둘째아들 바론이 축 하 글에서다. 그땐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 믹이 절정으로 치닫을 때였다.

 

새벽에 산통이 와 청주에 있던 고모가 급히 출 동하고, 그 새벽에 첫째 라온이도 뭘 아는지 의 젓하게 행동했다. 분만실로 간 아내는 마스크를 쓴 채 침대에 누 웠다. 첫째 라온이 때에 비해 여유가 스민 노회 함을 보였지만, 마스크 찬 아내의 얼굴에선 긴장 감이 역력했다. 왜 아니었겠나. 분만실에 들면 산모가 눕는 침대가 조금도 따 뜻하지 않고 참으로 을씨년스럽다는 데 너무나 도 깜짝 놀란다. 한국전쟁 때 부상병이나 받았을 법한 그 처연 한 꼴에 라온이 만나러 가서는 충격이 이만저만 이 아니었다. 경험은 많은 감각을 퇴화시킨다. 바론이 만날 때 본 똑같은 분만실 에선 그저 그러려니 했다. 도무지 자 력으로는 어떻게 바꿀 수 없는 환경 인 것이다. 그 무감각과 무감정을 불시에 떠안 기는 분만실에서 그 더운 여름 코로 나로 마스크를 낀 채 새 생명을 맞는 모(母)와 부(父)의 장면. 이 얼마나 강 렬한가. 나는 글을 보면서 곧 문제를 감지 했다. 이 기억은 왜 작년부터 삼촌 주 연의 삼겹살 굽던 그날의 기억을 전 복하지 못했는가. 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 가족과의 크고 작은 접점이 점점 사라졌다.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이 그 기억, 그 감정이 그날에 멈춰서 있다.

 

아내는 라온이에 이어 바론이를 얻고서 크고 작은 접점이 점점 많아졌다. 보탤 것보다 뺄 것 이 많은 날들이 누적되기도, 또 뺄 것보다 보탤 것이 더 많이 누적되기도 하면서 그 기억, 그 감 정이 그날에 멈춰서 있지 않다. 아내에 대한 내 감정은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 도 좋고 오르락내리락 중이다. 나는 이 감정에 주목하면서 최근 입을 닫기로 했다. 연애 때부터 지난 10년 간 채신머리없이 참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는 걸 어느 날 아침 불현듯 깨달았고, 나는 그 순간부 터 입을 닫기로 결심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아내에 대한 감정을 묶어놓 을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딴 것 생각 말고 라온이, 바론이 낳아준 것 만 생각해.” 엊그제 바론이가 장염을 앓아 쉬던 날, 마침 대전에 온 고모가 찾아와 해 준 충고 였다. 입을 닫는다, 바론이 탄생 2020년 8월 23일 과 라온이 탄생 2017년 9월 9일의 강렬한 기억 은 오래토록 추억되어야 마땅하므로, 나는 입 을 닫는다. 아무렴 1979년 2월 8일(아내 생일)과 2014년 12월 27일(결혼기념일)의 일을 라온이· 바론이 탄생일과 견줄 수야 있겠나.

 

나는 1979년 2월 경주의 일을 알지 못한다. 2014년 12월 또 한 번의 경주 일은 지극히 평범 했다. 뭇 사람들은 1979년의 일은 그렇다쳐도 2014 년의 일이 있지 않고서야 2017년과 2020년의 기 억이 생겨날 수 있겠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삶은 논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감정의 향방에 너무나도 쉽사리 좌우되는 것”이라는 답을 꾸깃 꾸깃 내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이성을 접어두고 감정에 따라 매년 8 월이 오면 아내에게 밥 한끼는 사주어야겠다. 9 월에도 아내에게 밥 한끼는 사주어야겠다. 그날 의 마스크, 그날의 무통주사(*)를 기억하면서, 아내에게 1년에 두 번 밥 한끼는 사주어야겠다. /심보통 2022.8.8.

 

* 라온이 때는 무통주사가 안 들어 생고생을 하였다. 마취 의는 체형 상 무통주사가 듣지 않는다고 했지만, 3년 뒤 같은 병원 다른 마취의는 그럼에도 단번에 무통주사를 성 공시켰다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