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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56

산남창의지 해제(解題) 21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2.02.1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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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창의지 해제(解題)

21코로나19가 잠식한 세월. 3년째에 접어들었으나 창궐(猖獗)하는 전염병은 숙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점점 온 세상에 만연해가고 있다.

이제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듯하다. 밥벌이 일은 손을 놓은 지 오래고, 차라리 산천경개(山川景槪)나 유람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여 마음 가는대로 돌아다녀본다.

그제는 우연히 청송군 안덕을 지나다가 천연기념물 제313호로 지정된 장전리 향나무 표지판을 보고 골목길을 들어섰다.

 

높이 8미터에 수관 폭이 25미터나 되는 나무의 위용도 대단했지만 나의 눈길은 大韓民國 建國功勞 獨立有功 十三義士 敍勳 追敍記念碑(대한민국 건국공로 독립유공13의사 서훈 추서기념비)로 향한다.

 

비문에는 청송의 남씨로서 청송의진, 산남의진에 투신하여 서훈을 받은 열세 분과 미서훈자 열한 분을 포함한 스물네 분의 선조 선열들을 기린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영양남씨청송 입향조 운강공 남계조의 묘소아래, 향나무 옆에 세워진 비석이다. 산남의진 선양사업이 지역 단위로, 문중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선양작업이 거국적으로, 최소한 경상북도 차원에서라도 이루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아버지 정환직 공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19069월 고종황제의명으로 정용기 대장이 석방된다. 정환직 선생은 옥고로 인해 와병중인아들을 만나 재거를 독려하며 익년 5월까지 의병을 거느리고 강릉으로 북상토록 행군 도표와 군략 일정까지 세밀히 지시한다.

 

동시에 사재(私財)를 정리하여 군자금으로 주었으며, 관동 서북 등지에서도 의병을 모집하여 강릉 금광평에 보내 무기와 탄약을 구입케 하고 화약 제조법을 가르쳐 북상해오는 산남의진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또한 서울 주요거리에는 격문을 붙여 반일 애국 사상을 고취시키고 군자금을 마련하는 등 서울진공작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정용기 대장은 와병 중에도 불구하고 각지에 재기(再起)의 격문을 발송하니 흩어졌던 2,000여명의 의병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2차 진영을 재정비하고 19074월 초순부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동해안을 따라 북상의 길을 열어 나갔다.

 

일본군 수비대는 산남의진과 신돌석의진의 합세를 크게 두려워 한 나머지 영덕군 팔각산 부근에 대부대를 집결해놓고 산남의진의 북상을 저지한 관계로 3일간 계속된 공방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일단 북동대산으로 후퇴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일본군의 무기는 자동소총인 반면의병들의 무기는 화승총이라 우기에는 제대로 격발이 되지 않아 전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하를 공격하며 북상을 시도했으나 전리품보다 전상자가 많았다.

 

더욱이 8월엔 총포 및 화약 단속법이 발효되어 무기와 탄약을 구할 수가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차에 일제의 군대해산 만행으로 백산 우재룡(禹在龍)과 김성일(金聖一)을 비롯한 해산 대한제국 군인들이 신무기를 가지고 산남의진에 입진하니 진세는 도리어 강화되었다.

 

한편 서울에서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지휘하던 정환직 선생은 산남의진의 북상이 늦어지자 8월말 영남에 내려와 정용기 대장과 여러 장수들에게 다시 서울진공작전 명령을 내리니 산남의진은 829일 죽장 매현(梅峴)으로 들어가 북상 준비를하였다.

 

이때 의병을 토벌하기 위해 일본에서 급파된 정규군인 보병14연대(연대장 기구치 대좌)가 산남의진을 섬멸키 위해 청송에서 입암(立巖)에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매복작전을 펴고 91일 새벽에 기습 공격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산남의진은 일본군의 역습을 받아 정용기 대장을 비롯하여 중군장 이한구,참모장 손영각, 좌영장 권규섭 등 수십 명의 참모와 많은 의병들이 전사하는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마침 상경 하루 전 죽장 인근의 기계에 머물고 있던 정환직 선생은 급보를 받고 달려와 전사한 아들과 장졸들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 아들의 뒤를 이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산남의진의 제2대 대장에 추대되면서 3차 진영을 다시 편성하기에 이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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