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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55

산남창의지 해제(解題) ⑳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2.02.0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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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창의지 해제(解題)

 

오늘 125, 오는 6월 영천시에서 개최예정인 12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기념행사개최와 관련한관계자 간담회가 열린다.

 

우리 영천시가 의병의 도시로써 충절의 고장임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관이나 관계 단체뿐만 아니라5개월 동안 시민 모두의 관심을 끌어내어 이 행사에 동참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터이다.

 

이제 영천시민 모두가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의 복성전투로 영천성을 회복한 의병부대 창의정용군, 구한말 구국의 일념으로 창의한 산남의진의 고장임을 알고 자긍심을 가질 때이다.

 

2) 산남의진(山南義陣)의 결성과 활동

(1) 1차 결성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온 나라가 의분으로 들끓을때 고종황제는 당시 시종관으로 있던 동엄 정환직 선생을 은밀히 불러()은 화천지수(華泉之水)1) 를아는가?” 라고 물으며 그의 손바닥에 짐망(朕望)”이란 두 글자를 써서 밀지를 내렸고, 동엄 선생은 관직을 사퇴하고 창의(倡義)를 결심하였다.

 

190512월에 정환직(鄭煥直) 선생은 장자 용기(鏞基)에게 거병의 뜻을 전한다. 아들에게 귀향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강원도 금광평(金光坪)으로 집결토록 명하고, 선생은 서울과 영남 일대를 돌면서 은사(隱士)들을 만나 거의를 도모한 후 상경하였다.

 

고종황제로부터 5만 냥을 하사받고, 전 참찬 허위(許蔿)로부터 퇴관 동료들의 모금액 2만 냥과 사재 2만 냥을 군자금으로 삼아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19062월 청나라 사람 왕심정(王心正)을 중국으로 파견하였다.

 

선생은 경향(京鄕) 각지에서화약 기술자와 의병을 모집하여 강릉 금광평에 집결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자 단오가 창의한 의병과 강릉에서 합세하여 서울로 진격하여 일제 감시 하에 있는 고종황제를 탈출시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정용기 선생은 부친의 명을 받고 귀향하여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창의소를 영천에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하였다.

 

19063월초 각처로부터 모인1,000여 명의 의병들로부터 대장으로 추대된 정용기 선생은 의병진영의 이름을 산남의진이라 정하고 부서와 조직을 편성하여 24개 고을에79명의 지대장을 임명하여 각 군에 파견하고 의병 사상 처음으로 군가를 제작하여 부르게 하니 의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34일 산남의진 본진은 각 진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동해안을 따라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며 북상을 시작하던 중 경북 영해에서 신돌석(申乭石)의병진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패했다는 첩보를 접하게 된다.

 

정용기 대장은 이를 돕기 위해 수백 명의 병력을 차출하여 직접 인솔하고 영해로 가던 중, 포항시 신광면 우각을 지날 때 대구 진위대 경주 분견대장 신석호의 아버지 정환직 공이 체포 구금되었다는 거짓 간계에 빠져 그만 적에게 체포되고 만다.

 

그는 대구 감옥에 이송 수감된 후 수차례 귀순을 권유받았으나 끝내 거부하고 오히려 옥중에서도 적의 주둔지역을 정탐하여 중군장(中軍將) 이한구에게 밀지를 보내 공격토록 명령하였다.

 

정용기 대장이 체포당한 후 중군장이한구가 대중을 거느리고 청하(淸河영덕·진보·청송의 여러 읍을 전전(轉戰), 신돌석과 더불어 합세하여경주를 함락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에 막혀 신돌석군이 내려오지 못한데다가 적의 1대대가 청송에 진주하여 의병을 탄압하는 한편, 선유사(宣諭使)로 하여금 민중에선 유하기를, ‘의병만 해산한다면 일본은 즉시 철병할 것이며 절대로 영토적 야심은 없다.’고 선전하니 민심은 그 말에 현혹하여 도리어 의병에게 해를 받는다.’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날로 더하여 갔다.

 

이에 이한구는 제장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의 이 의거는 나라를 안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함이 어늘, 이른바 녹을 먹는 무리가 이토록 역선전을 하니 아무 것도 모르는 민중이 혹 그렇게 따르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니 우리들은 대중의 각성을 기다려 재거(再擧)함만 같지 못하다.” 하고 드디어 휴병(休兵)하였다. (계속)

 

산남의진가

 

) 백두산 벋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년아름다운 금수강산 단군님 터전 대대로 이어받은 이천만 우리나가자 힘을 모아 왜적을 쳐서 조국의 독립 찾아 자유 누리자

 

) 억만년 자리 잡은 대한의 자손 침략의 역사 없는 백의민족들나려 이후 왜구가 침노하더니 임진왜란 가신지 몇 년 되었나나가자 힘을 모아 왜적을 쳐서 조국의 독립 찾아 자유 누리자

 

) 도이(島夷)의 소추가 또 쳐들어와 아름다운 이 강산을 더럽히었네조상에 이어받은 재주와 용기, 힘을 모아 왜적을 쳐부수어라나가자 힘을 모아 왜적을 쳐서 조국의 독립 찾아 자유 누리자

 

) 보아라 이 강산에 밤이 새나니 이천만 너도나도 함께 나가세광명한 자유독립 탈취한 다음 태극기 높이 들고 만세 부르자나가자 힘을 모아 왜적을 쳐서 조국의 독립 찾아 자유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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