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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52

산남창의지 해제(解題) 17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1.12.3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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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창의지 해제(解題) 17

또 의병 유생들이 개화를 반대한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개화가 일제 침략의 수단, 즉 문화 침략이라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심남일은 개화의 침략적 본질을 본시 개화는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룬다는 뜻이다. 지금의 개화는 백성을 왜적 앞에 인도하여 무릎을 꿇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문화 침략은 정치적·군사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익현은 이 점을 북방의 오랑캐는 우리의 의관을 찢고 서쪽의 귀신은 우리의 마음을 유혹한다.”고 지적하면서 문화 침략의 중대성을 인식하였다.

유인석은 개화가 자기를 잃고 저들로 화할 위험(失我化彼)”을 안고 있는 사실을 경고하였다.

이리하여 개화는 곧 일본화이자 소중화(小中華)가 소일본(小日本)으로 떨어지는 것이라 인식되었다.

개화는 민족의 수치(開化之恥), 개화당의 주장은 개 같은 놈들의 이리 같은 마음(開黨之狼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의병의 반개화사상은 항일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어갔다.

첫째, 일제가 개화를 앞세워 경제 수탈을 자행하자 의병들은 도탄에 빠진 농민 경제의 재건을 위하여 갱도광복(更道匡復)만이 민생과 국권 회복의 유일한 일이라 확신하였다.

일제와 개화 관료들은 부국강병의 미명 아래 빈국약병(貧國弱兵)의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진정한 부국강병책은 신제개혁이 아니라 구제복고라 믿어졌던 것이다.

심남일은 국가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신하와 백성은 국가를 하늘로 삼는다. 따라서 먼저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고, 나라가 튼튼해야 백성이 편안한 것은 정상적인 이치이다. 만일 민생이 밥을 먹지 못하면 국가가 양곡을 내주고, 국가가 난을 당하면 백성이 몸을 희생하여 국가에 보답하는 것은 만고에 바꾸지 못할 이치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관한 이 같은 인식은 일제의 경제 수탈에 대한 농민의 격분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해산은 태조 이래로 토지의 비척에 따라 토지의 다과를 조절하고, 나라에는 도안(圖案), 고을에는 양안(量案), 들에는 금기(禁忌)가 있어 관리들은 부당한 징세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국가가 함부로 징수하지 않으므로 국고에는 항상 남은 곡식이 쌓여 있었고 백성 또한 여력이 있어 오랫동안 요순의 덕화(德化)를 누려왔던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기삼연(奇參衍)은 더 구체적으로, “자강의 길은 오로지 주자(朱子)의 강목(綱目)을 회복하는 일이니, 강은 전제(田制)를 확립하는 것이며, 목은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군사를 기르며 풍속을 바로잡는 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의병들은 일제 침략의 한갓 방편에 지나지 않은 근대 개혁을 불신했을 뿐 아니라 과학 기술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었다.

기계는 순박한 풍속을 깨뜨리는 음란하고 교활한 물건(淫狡之物)”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기는 흉한 기계요 전쟁은 잔인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 만국인이 그 기교를 흉한 기계에다 부리고, 잔인한 일에 꾀를 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가?”라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국가를 망치는 것도 바로 침략의 첨병인 기계 때문이라고 하였다.

의병이 기계를 배격하고 증오한 것은 최익현의원사(怨詞)에 잘 나타나 있다.

평생에 미운 것은 화륜차(火輪車), 하루에 천리길을 달리고 있네, 우리 사우(師友)들을 태우고 가니, 찢어지는 듯 번개같이 달려가네, 저 기차 저 기선이여, 어찌 저렇듯 어질지 못한가, 묻노니 누가 만든 것인가.”또한 일본인에 대해서는 근대적 사회 · 경제제도와 과학 · 기술의 빈곤과 혼란을 가져온 장본인임은 물론, 실제로 음란하기 짝이 없는 민족으로 보았다.

한국의 풍속은 본디 남녀를 가리는 것이 엄격하다. 그런데 일본인이 촌락에 들어와 살면서 여름철에 살을 드러내고 한국인 집에 들어가니 부녀들은 놀라서 피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 욕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집을 팔아 이사하였다.”

이것은 태서인(泰西人)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인륜을 모르는 오랑캐이기 때문이었다. “

서양인은 부모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공상(空桑)에서 났는지 낳은 부모를 버리고 섬기지 아니하며, 새나 짐승과 떼를 지어 사는지 임금을 버리고 섬기지 아니한다.

남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시켜서 임금을 버리고 나를 섬기라 하며, 아버지를 버리고 나를 섬기라 하며, 스승을 버리고 나를 배우라 하니 천하에 어찌 이런 도가 있겠는가?” 나란 곧 예수를 말하는 것으로 기독교가 그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의병의 반근대주의사상은 유인석의 우주문답(1914)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는 오늘의 세계를 크게 중국과 외국으로 나누었다.

중국은 정신 문명(上達)의 나라요, 외국은 물질문명(下達)의 나라이다. 중국에서는 윤리 · 도덕이 발달하고 외국에서는 과학 ·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는 그 나라의 특징이므로 각기 두 나라의 국민들은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동양인은 정신문화의 발전에 전념하여 인류의 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하고, 서양인은 물질문화의 발전에 전념하여 인류의 문화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동양인은 서양의 물질문화를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서양인에 예속되고 서양인으로 되어버리는 것은 부당하다.

서양인도 동양인의 정신문화를 배워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동양과 서양의 평화적 공존은 정치 제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에서 발달한 민주 제도는 동양의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니 군주 제도를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긴요하다.

동양이 지금 갑자기 군주제도를 버리고 민주제도를 실시하게 되면, 첫째 정치 혼란을 불러일으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자초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군주 제도라 하여 반드시 전제(專制)하고 민주제도라 하여 반드시 민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민주하고 전제하느니 군주하고 민주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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