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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남의진역사(山南義陣歷史) 43

산남창의지 해제(解題) ⑧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1.10.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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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창의지 해제(解題) ⑧

2. 의병(義兵)의 역사
1) 의병의 정의

군대를 양성하지 않고 정권다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나라가 외침을 당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라 하겠다. 

 

국가의 정규군이 그 역할을 못하니 외적으로부터 침탈을 당하는 것은 백성들이고 백성들이 자위부대를 조직하여 외적과 싸우게 된 것이 민병, 곧 의병인데 이러한 의병의 역사는 저 고조선의 다물군으로부터 비롯된다.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来降, 以其地為多勿都, 封松讓為主. 麗語謂復舊土為多勿, 故以名焉.」<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1권>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한 까닭에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물’은 ‘옛 땅을 회복한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이다. 옛 조선 유민들이 한(漢)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자 하는 데서 ‘다물’이란 말을 썼던 것이다. 

한자로 풀이를 하면, ‘多(다)’는 ‘많다’, ‘勿(물)’은 고대(古代)에 사대부(士大夫)가 백성을 불러 모을 때 세웠던 기(旗)를 본 떠 만든 글자이므로 이 둘을 합하면 ‘깃발 아래 많은 백성이 모이다’의 뜻이 된다. 

따라서 ‘한(漢)나라에 빼앗겼던 옛 영토를 되찾고자 모여든 백성’이 다물군이다.

그러나 의병이라는 용어는 조선 이후에야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삼별초는 고려가 항복하기 이전에는 최우의 사병집단이었으며, 대몽항쟁에서 유명한 김윤후가 살리타를 무찌를 때 그의 신분은 승려였고 그가 이끈 군대는 노비가 주축이 된 민병이었다. 

이처럼 조선 이전에는 개인의 지배하는 사병이 존재하였고 때로는 사병이 나라의 명을 받아 활동하기도 하는 등 관군과 비관군의 구분이 모호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이전의 민병들을 의병이라 일컫지는 않는다.

역사를 나의 얇은 지식으로 이러저러 주장하거나 평가할 수 없으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의병에 대한 기록을 인용한다.

의병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자위군을 지칭하는 용어다.

의병은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인 것이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 · 조선 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같이 오랜 의병의 역사로 인하여 특유의 의병 정신이 조성되어, 승패를 가리지 않고 죽음을 결심하고 과감히 전투하는 것을 의병의 본분이라 여기게 되었다. 

나아가 의병 정신이 곧 한민족의 특성이라고까지 믿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을 피력한 학자로 박은식(朴殷植)을 들 수 있다. 

그는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라고 하면서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즉, 우리 민족은 역대 항중 · 항몽 · 항청 · 항일의 투쟁 속에서 무력이 강한 국민성을 갖게 되었고, 이 때문에 어느 침략자로부터도 정복당하거나 굴복하여 동화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병자 양란의 의병과 한말의 의병이었다.

2) 임진왜란과 의병

임진왜란 때 의병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관군의 무력으로 인하여 일본군이 수십 일 사이에 우리의 국토와 죄 없는 백성들을 짓밟자,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일본군은 주요 도로를 따라 진격하면서 요충지에만 군대를 주둔시켰기 때문에, 일부 지역은 일본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지역은 왜적의 침략에 항거하는 민족적인 저항의 온상지가 되었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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