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선거 기간이 끝났습니다. 눈부신 벚꽃 사이로 현수막에 새겨진 강렬한 문구들을 실컷 봐왔으니 식상함을 넘어 피로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선거판을 따라다니다 보니 봄이 오고 가는 줄 모르고 보낼뻔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제 봄 이야기나 좀 해보려 합니다.봄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학창시절에 배운 ‘상춘곡’입니다. 흥겨운 정취가 묻어나는 가사작품은 봄의 풍류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조금만 옮겨 보겠습니다.桃花杏花(도화행화) 夕陽裏(석양리)예 퓌여잇고,(복사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있
(지난호에 이어)그러니 어떻게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그들에게 여자는 하녀처럼 일만 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이는 관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법으로도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를 다스리던 ‘마누법전’이라는 것을 보면 여자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마치 종의 굴레를 씌우는 풀무질과 같은 것으로써 결혼과 더불어 여자는 남자에게 완전히 구속되어 남편의 부속물이나 또는 종이나 하녀가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고분고분하게 복종하고, 남편의 요구에 따라 무엇이든지 부족함 없이 다 이행해야만 비로소
봉화군 봉화읍 유곡1리에 자리 잡고 있는 닭실마을은 봉화지역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 원래는 파평윤씨의 터전이었으나 안동권씨 가운데 충재 권벌(1478-1548)이 입향하여 세거지를 형성한 일족의 마을이다. 권벌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한성판윤을 거쳐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학자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을 연구하며 터전을 닦았다. 그가 정착할 당시 이 마을 자제들과 인근지역 선비들의 학문수양 장소로 건립된 청암정과 그의 맏아들 권동보가 아버지를 그리며 세운 석천정사는 함께 명승으로 지정되어
에어포켓(23)누구에게나 자신의 바다를 품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서화인의 바다는 파도소리가 자욱한 물안개로 덮여있었다. 선박이 끊긴 부두에는 오래된 방파제가 건들거렸고 사연 많은 해풍이 넘나들었다. 먼 바다를 실어 나르는 물결이 잦으면 갈매기가 떼로 날거나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겼다. 비린내는 푸른 멀미처럼 찾아오고 바닷가에서 밀려난 폐선들이 소리 내어 흔들거렸다. 등대의 불빛은 한 움큼씩 던져지고 모난 성질을 다독여 몽돌을 따글따글 굴리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는 짠물 속을 지나가는 어선들의 살점처럼 느껴졌다. 팔베개를 한 서화인은
동사 골때리다는 황당하다는 뜻이다. 뼈때리다는 동사는 없지만 ‘뼈를 때리다’는 관용어는 정곡을 찌른다는 뜻이다. 오늘 [글밥]은 뼈때리다의 잘못과 뼈를 때리다와의 혼돈을 피하면서도 적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뼈 때리는 이야기’라고 썼다. 뼈와 때리다를 띄어쓴 것이다.실제 골을 때리면 어찌 될까? 죽는다. 실제 뼈를 때리면 어찌 될까? 고꾸라진다.무릎에는 뼈와 뼈 사이에 연골이 있다. 이 연골은 아래뼈 위쪽으로 오(ㅗ) 자 모양으로 돼 있다. 연골이 있어 무릎 위뼈와 아래뼈가 부드럽게 펴지고 굽혀진다. 물론 두 다리로 멀쩡하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이 영천 과 청도의 유권자들로부터 사실상 압도적 선택을 받았다. 앞서도 수없이 강조했지만 어느 선거가 중요하지 않으랴마 는 이번 선거 역시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선거 였다. 그만큼 당선된 이만희 국회의원에 거는 기대감에 책 임은 크고 막중하다. 지역의 위기를 극복해 내고 한발 앞으 로 가는 발전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쟁 후보자들과의 사소한 말싸움이야 차 치하더라도 현직 기초자치단체장인 최기문 시장과의
양강연(羊江淵)195)은 백학산(白鶴山) 아래에 있고, 가까이에 약천(藥泉)이 있다.(원문) 羊江淵 在白鶴山下 傍有藥泉 박연(朴淵)196)은 고을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임진왜란의 전적지가 있다. (원문) 朴淵 在郡西三十里 有壬辰倭亂戰蹟 동강탄(桐江灘)197)은 고을의 남쪽 10리 완귀정 아래에 있다.(원문) 桐江灘 在郡南十里 翫龜亭下 서호(西湖)는 고을의 남쪽 20리 강정(江亭) 아래에 있으며, 진사(進士) 조병소(曺秉韶)198)가 호수 위에다 정자를 지었다.(원문) 西湖 在郡南二十里江亭下 進士曺秉韶築亭于上 옥대폭(玉臺瀑)은 고
남석인자는 우팔, 본관은 영양으로 경재 천주의 후예이다. 평소에 뜻과 절조가 있었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처음에는 남석우의 군포(郡炮)로 종사하였다가 병오년의 창의에 눈물로 맹세하고 의병진에 종군(從軍)하였다. 서기 1907년 정미 봄 산남의진에서 지휘의 임무를 받아 이세기와 더불어 여러 고을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수집한 군기(軍器) 등 물건들을 동대산과 보현산 두 산의 가운데 묻어두었다가 사실이 누설되어 두 사람이 동시에 붙잡혔다. 이세기는 힘이 좋은 사람이라서 호송되는 도중에 탈출하고 남석인은 혼자 대구 감옥에 갇혔는데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