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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익양지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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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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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연혁(建置硏革)
영천은 본래 신라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는데 경덕왕 때 임고(臨皐)라 고쳤으며, 고려 초에 도동(道同) 임천(臨川) 두 고을을 합하여 영주(永州)라 고쳤다.(일설로는 고울(高鬱)이라 한다)

성종14년 자사(刺史)를 두었으며 현종9년 겅주(慶州)에 소속시켰으며, 명종2년 감무(監務)를 두고, 고종시에 부사(副使)와 판관(判官)을 두었고 우왕 계해(癸亥)에 품계를 높여 지주사(知州事)로 하였고(다른 이름으로는 익양(益陽) 또는 영양(永陽))이라 하였다)

조선조 태종15년 을미(乙未)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지군사(知郡事)로 하였다가 세조12년 병술(丙戌)에 고쳐서 군수(郡守)로 하였다.

◯도동현(道同縣)
본래 신라 도동화현(刀冬火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고쳐서 임고군(臨皐郡)의 속현(領縣)으로 하였다.

◯임천현(臨川縣)
본래 골화소국(骨火小國)이었는데 신라 조분왕이 공격하여 취하였고, 경덕왕때 임고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김유신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골화관(骨火館)에서 잤다고 하며 이 사실은 삼국유사에 보인다.

◯면백현(黽白縣)
본래 신라의 매숙차현(買熟次縣)이었다가 경덕왕 때 신녕(新寧)에 소속시켰으며, 연산 3년 영천(永川)으로 소속되었다가 다시 신녕(新寧)으로 소속되었다.

◯이지현(梨旨縣)
본래 이지은소(梨旨銀所)였다가 고려말에 승격되어 현(縣)이 되었으며, 조선 태조 시 고쳐서 신녕(新寧)에 소속되었다.

◯신녕군(新寧郡)
본래 신라시대에는 정화현(丁火縣)이었으며 경덕왕 때 고쳐 화산(花山)으로 칭하여 임고군(臨皐郡)의 속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시 경주에 소속시켰으며, 뒤에 신녕(新寧)으로 고쳤다. 공양왕 때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조에는 현감(縣監)으로 고쳐 장수역(長水驛)으로 옮겨 두었다. 연산 3년 현감인 길수가 엄하고 포학하여 고을의 아전들이 고통스러워 고을을 비우고 달아났다. 이로 인하여 제도를 혁파하여 (현의 마을들을)이웃 고을에 소속시켰다 (연산) 9년에 복귀 시켰다. 고종 갑오년 군(郡)으로 승격시켰으며 지금은 영천군에 소속되었다.

◯와촌부곡(瓦村部曲)
숙종조 갑신년 땅을 쪼개 하양에 소속되었다.

◯북안부곡(北安部曲)
본래는 경주였는데 융희 원년에 영천에 소속되었다.

◯대창부곡(大昌部曲)
본래 경주 땅이었는데 지금은 영천에 소속되었다.

◯상거하거부곡(上巨下巨部曲)
본래 청하(淸河)에 소속되었다 지금은 영천에 소속되었다.

◯임압부곡(立巖部曲)
지금은 옮겨 영일(迎日)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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