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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20.03.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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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이란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다. 계절은 분명히 봄이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인데 꽃샘추위같은 반짝추위를 이르기도 하지만 봄이라도 환경이나 마음이 아직 여의치 못하다는 은유적 뜻으로 이맘때쯤 자주 쓰는 말이다.

2020년 이 봄에 이런 표현이 딱 들어맞다. 봄이란 원래 희망을 뜻하지만 지금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우리의 처지가 자못 어둡고 심각하다. 매화, 산수유를 비롯해 봄을 설레며 맞는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게 과연 봄인가 싶다. 블랙홀이 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화사한 봄꽃을 감상할 여유마저 앗아갔다. 봄이 왔건만 마음은 여유없는 뒤숭숭함으로 움츠러들고,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마스크로 꼭꼭 감쌌다. 그 위로 드러나는 표정은 화사한 봄빛의 미소가 아닌 근심 가득한 눈빛이다. 바이러스 하나가 우리네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루벌이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행여 그들의 가열찬 삶의 의지마저 꺽일까 두렵다. 아직 온몸을 방호복으로 무장한 채 서성이는 의료진의 모습도, 하루에 몇 번씩 날아오는 재난문자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차를 타고 학교앞을 지나가도 문은 굳게 닫혔고, 이맘때쯤 들려오던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사라지고 삭막하다. 초등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주변 상인들에게도 예년 같았으면 2∼3월은 졸업과 입학이 있어 1년 중 매출이 가장 많았을 시기인데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전통시장은 이맘때쯤 봄꽃이 되신 시골 할매들을 비롯해 사람들이 옷깃을 스치고 시끌벅적해야할 골목인데 휴업중이고, 건너 상가는 살랑거리며 심술부리는 봄바람이 아니라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 바람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하루 한명의 손님도 없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코로나19로 인하여 금일 휴무합니다'라고 써 붙여놓고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식당도 천지다. 손님을 태우기 바쁘던 역앞의 택시들은 길 한쪽에 두줄로 길게 정차해 놓고 하염없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역동적이어야 할 거리에는 사람이나 차들이 드문드문 현저하게 줄었고, 따스한 봄바람이 아니라 휑한 겨울바람만 휘돌아 나간다. 상권은 얼어붙어 "코로나에 걸려 죽기보다 굶어 죽겠다"는 상인들의 앓는 소리는 노래처럼 흘러 나오는게 현실이다. 과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거기에다 더해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요즘 말로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를 두라고 권한다. 감염병 예방의 마지막 승부수라니 주말에는 왠만하면 집콕이다. 바이러스가 사람사이를 불신검문하고 떨어져 있으라는 옐로카드를 내미는 것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지내나. 온라인으로라도 지인들 끼리의 연대를 챙기고 심리적 방역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이야 해야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낭패다. 앞만보며 달리던 빠듯한 시간들을 돌아보며, 좋게 생각하고 잠시 쉬어가는 이 시간 동안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써볼까. 쉬울거 같고, 단순해 보이던 이 조치가 갈수록 우리 생활 전반을 위축시키고 마비시키면서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지게 하는 듯하다. 자칫 사람사이 마음의 문까지 걸어 잠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길거리에서 어쩌다 사람을 만나도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지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절과 풍경이 너무도 생경하고도 낯설다. 여태껏 정말로 사소하던 인사와 너무 평범하던 웃음소리, 지루하고 재미없던 그 일상들이 이제는 마냥 그립다. 지지고 볶고 얼굴 붉히며 앙앙거려도 그때가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백신보다 효과가 좋다니 길게 한달 정도는 참아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이면 곤란하다. 협조할 일이라면 외출이든 모임이든 자제하는게 맞지 않겠나 싶다가도 이것이 사람사이 비인간화를 부추기고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리게 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춘삼월 호시절’은 어디가고 심리적 계절은 몇 주째 한겨울에 머물러 봄의 느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환란을 하루바삐 끝장내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우리 일상에, 경제도, 사회분위기도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사람사이 마스크 벗고 사회적 거리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꽃잔치가 벌어진 들로 산으로 나갔으면 좋으련만. 마른 가지를 뚫고 여린 새움이 터오르듯 기어히 빼앗긴 삶에도 희망의 봄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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