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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모습, ‘~답게’ 사는 사회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9.08.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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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라고들 하죠. 아홉 가진 사람이 열을 채우기 위해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뺏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불공평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수고로움을 멀리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겠거니와 남이야 어떻든 나만의 욕구충족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기적(利己的) 사고가 점점 만연해감으로서 우리 사회는 심각한 병통(病痛)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利器), 물질문명이 발전하면 정신문화의 영역도 함께 나아가야 건강한 선진 사회를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너무 빠른 경제성장으로 만들어낸 재화(財貨)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해야겠지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선진국일수록 사회봉사를 당연시 여기는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점수를 쌓기 위한 봉사활동이 더 많습니다.

사람마다 태어날 때 천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종교적인 해석을 붙이자면 내 신앙의 절대자가 주신 것이든지, 전생의 숙업이 쌓인 것이든지 어쨌든 배우지 않음에도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 있고 학문에 밝은 사람이 있고 도리에 밝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각자의 소질이 다 달라 트인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한 평생 그 이치를 알고 그 방향으로 살아간다면 아마도 사회는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누구나 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타고난 소질과는 관계없이 높은 자리, 돈 많이 버는 곳으로 바라기하는 풍조가 자연스러워져서 너도나도 조기교육, 과외, 해외유학 등을 통한 상류층으로의 신분상승을 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높은 학력을 가진 실업자가 많아지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벌거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상한 풍토병에 시달리는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알면서도 나만은 아닌 척하는데다, 이제는 수십 년 골수에 쌓인 병이 되어 쉬 고칠 수 없는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40여년 동안 일제의 핍박 속에 살면서 정의로운 이웃을 고발해서 이익을 취하는 병, 남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병, 뭉치면 큰일난다는 병 등이 지금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지요. 어떤 사회에서는 여전히 큰소리치고 뭘 아는 것처럼 협박하면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또한 서로 고소, 고발하고 이간질해서 자기 편 만들어 어깨 힘주는 사이비 조직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영천시의 민선 시장이 한 사람도 온전하지 못한 서글픈 모습이 그들만의 잘못일까요? 권력과 부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존경할 줄 아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의 지도자로서 권력을 남용하여 축재(蓄財)하는 것이 당연시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돈과 권력을 동시에 쥐고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모순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 몇몇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요?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선거 잘 해서 당 바꾸고 사람 바꾸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그 당시 시류(時流)를 못 읽어 망해가는 고려를 지키려 했을까요? 일사이군의 충절을 지키려는 것은 목숨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이름은 더럽히지 않으려는 명예심입니다. 임란의병의 의병장들, 산남의진의 항일의병들, 광복운동의 독립투사들이 목숨과 재산을 초개같이 버린 것은 나라를 지키고 되찾는 것이 자신의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에게 붙잡혔을 때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적을 꾸짖는 당당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옛 선인의 발자취를 더듬는 이유는 그 삶의 모습을 배우는데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남에게 비굴하지 않으려면 참괴(慙愧)를 알아야 합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는 실수와 허물이 전혀 없을 수 없겠기에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알고 담담히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공부가 필요할 터입니다.

답게 살고잦 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충담사(忠談師)는 일찌기 경덕왕 앞에서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할지면 백성이 어버이처럼 따르리라 일갈했습니다. 이름이 어찌 그냥 이름이겠습니까. 대통령도 장관도 시장도 공복(公僕)인데 선서할 때만 공복이고 금방 잊어먹습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공복이고 주식회사 대표는 주주들의 공복입니다. 이제는 매스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두 공복은 아니어도 공인(公人)입니다. 어른은 아이들의 선배이고 부모는 자식의 거울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인인 셈이지요. 아버지답게, 어머니답게, 어른답게.... 하면 우리 사회는 참 좋은 모습일 것입니다.

배려는 나의 부족함을 알고 스스로 성현의 뒤를 밟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와집니다. 내 잘난 마음으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어렵지요. 잘난 사람은 습관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려 들기 십상입니다. 나다운 모습을 갖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곧 나의 부족함을 채울 공부거리가 되니까요. 군자의 도를 실천하지 못해도 그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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