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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노인요양병원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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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15: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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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오래 살아야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늙고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보다 수준있고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면서 행복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늙으면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기 어렵고, 자녀의 도움마저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이 있다. 정부가 2008년부터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여 노인 돌봄을 어린이처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재가 요양보호사들에게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는다.

사무실 바로 앞에 노인요양시설이 있다. ‘노치원’이라 불리는 주간보호도 겸하는 곳이라 아침 출근 때마다 어르신들을 태워 나르는 통근용 승합차와 마주친다. 힘은 약해지고 기력이 쇠한 구부정한 몸에, 마른 삭정이 같은 팔과 다리가 건드리면 부러질 것만 같은데 요양보호사들의 케어를 받으며 들고 나는 모습을 본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인은 생의 마지막 2년 가까이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보낸다는 뉴스를 봤다. 요양원은 이름처럼 노인들이 편하게 재활하고 생을 정리하는 공간이 될까. 노인 요양시설에 오래 머물수록 ‘불행한 노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흔히 노인들은 요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현대판 고려장터라고 말한다. 한번 자식들에게 이끌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니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번쯤 그곳에 가본 사람은 느끼는 사실이지만 할 일없이 누웠거나 고통스러운 투병을 지켜보는 일이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요양원은 심리적나 의학적으로는 안전한 곳이라 할 수는 있지만 폐쇄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다. 그곳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유로운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또 말로는 요양보호사들이 가족같이 모신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디 정말 가족같으랴. 한번 가면 늘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갇히는 곳이 거기라는 사실이 여러 군데서 밝혀졌다.

하지만 지금 비록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 삶의 마지막 순간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요양원 신세지만 그들도 한때는 꽃같은 청춘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며 삶의 에너지가 충만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곳은 본인이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곳도 아니고, 가기 싫다고 해서 안갈 곳도 아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 여유있게 노안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기실 입소 초기엔 이사람 저사람 가족들이 종종 요양원을 찾아 효도를 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발길이 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한 한 의사가 썼다는 글이 인터넷이나 카톡, 밴드 등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통찰력이 돋보인다. 한국 가족 사회의 단면을 잘 짚으면서 그 역학관계를 살짝 비꼬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요양병원에 면회와서 서 있는 가족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것 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그 옆에 뻘쭘하게 서 있는 남자는 사위다. 문간쯤에 서서 먼 산을 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고, 복도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물론 100%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할 딸같은 며느리도 많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많은 어르신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의 인생역정이 이렇게 될 줄은 아마 상상이나 했겠는가. 젊은 시절엔 누구든 젊음을 만끽하며 요양원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늙으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어느 누구라도 품위있게 늙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그러나 아무나 품위있게 늙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건강을 비롯한 노후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미리 챙겨 두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약하고 감각기능도 떨어져 스스로 약자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으며 의기소침 해지기 일쑤다. 쉽게 자괴감에 빠지고 문제의 원인을 안으로부터 찾으려고 하는 경향도 많다.

살아봐야 아는게 우리네 삶이라지만 혼자 오롯이 마지막을 맞는 것이 인생이다. 따라서 노년엔 정서적인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여유라는 것은 결국 금전적인 것과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젊은날에 스스로 내실있는 노후대비를 해야 한다. 죽음을 알기에 삶이 소중한 것이다. 죽음에 임박해 삶을 돌아볼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생의 마지막에 간절히 원하게 될 일을 해야한다. 그리하여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 삶을 살고, 그런 죽음을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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