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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내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

최병식 편집국장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8.12.1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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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힘들고 고달플 때가 오히려 많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는 미래라는 희망, 판도라의 상자가 있어 힘들어도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 되면 우리의 힘듦을 해소해 줄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발딛고 있는 세상은 분명히 민주주의 사회다. 그런 민주사회도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의 삶을 보다 나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줄 거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고달픎을 이기며 힘들어도 느끈히 견뎌내고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세상을 민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지니고 살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민주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신과 공공의 일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화와 토론이라는 절차를 존중하고,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며, 다수결과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또한 민주 사회의 주인은 주체자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적절한 목소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살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숨기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날때도 참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말하지 못할 때가 흔하다. 그렇게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겉과 속이 다르게 산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시민이라면 이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의식과 문화수준, 그리고 민주적인 절차들은 넉넉히 지켜가면서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한다. 내가 속한 지역의 권력을 위임 받은 사람들이 과거처럼 더이상 우리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민주 시민의 일상적 참여와 감시를 이끌어 그들앞에 내가 주인이 돼야한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여도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을 보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 마음이 곧 하늘이다. 그런데 세상 살아가기도 바쁜데 팍팍한 나의 목소리 다 내가면서 사는 것은 어렵다고들 한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며 먹고 살기도 바쁜데 공동체를 위한 목소리 한마디를 한다는게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반쪽짜리 경마공원이 들어오든 말든, 오는 사람 하나없는 땅에 혈세를 쏟아붓든 말든 내 먹고 살기 바쁜데 오불관 아닌가.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함에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끌고가도 뭐 어쩌겠느냐고 하는데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하고 다시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줘야 민주주의를 살리고, 민주사회를 건강하게 키워갈 수 있다. 위정자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위태로운 국면에서도 가만히 있다는 것은 무언의 공범이며 어렵게 끌어올린 민주주의의 끈을 한꺼번에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수없이 저질러진 불합리 속을 뻔히 들여다 보면서도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면 지역사회는 더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어지고 공멸의 길로 들 것이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좋은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렵게 일궈온 민주주의와 주민자치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자치가 무언가. 그야말로 자기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되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 지역의 일을 꾸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입닫고 침묵한다면 우리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원하는 주민자치와 민주주의는 한발씩 야금야금 후퇴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우리 목소리가 끊임없이 분출되고 쏟아질 때 비로소 자치와 민주사회는 실현된다. 시내 사람 목소리가 커다고 해서 시내만 잘 돼서도 안되고, 기득권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기득권만 계속해서 잘 살아서도 안된다. 먼 골짝 시골동네에도 정주여건이 갖추어진 문화, 복지시스템이 작동하여야 한다. 시장의 공약사항인 읍면동 균형발전 사업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져야 하겠다. 공무원들은 흔히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공공성, 물론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모두에게 고루 혜택이 갈 때 쓰는 말이지 일부의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라면 공적인 영역을 벗어난 말이 아닌가. 촌 골짝에도 사람이 살고있고,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이나 서민, 장애인, 고령의 노인분들... 그들도 좋은 환경과 문화, 복지혜택을 누릴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공성으로 말한다면 수요가 부족하다고 결코 소홀히 할 일이 아니다. 열악한 정주여건 개선과 삶의 격차를 줄이는 것 또한 공공의 일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도록 사회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위정자들은 제발 이런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받들어 주길 바란다. 모두가 행복한 진정한 주민자치와 민주주의가 꽃 필려면 내가 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된다.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눈치 안 보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데 신경을 많이쓰면 마음에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다 어른’이란 강의를 보면 강신주 철학교수는 수없이 이야기 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마라, 나 자신답게 살아라고. 눈치 안 보고 나답게 산다는 건 또 어떻게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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