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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육지戰 첫 승리 ‘영천성 수복전’ 기념일 만든다

최순례 시의원, 조례제정 제안…영천 랜드마크 움직임 급물살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8.11.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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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성복성전투를 기리는 기념일 제정과 기념탑 건립으로 영천성 수복정신을 계승하고, 영천의 랜드마크로 승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영천시의회는 매년 9월 2일을 임진왜란 영천성수복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제정을 추진한다.


 최순례 영천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지난 13일 대표발의하고 의원 11명이 공동발의한 ‘임진왜란 영천성 수복전 기념일’은 지난 15일 입법예고됐다. 최 의원은 지난 21일 의회 정례간담회에서  조례제정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번에 발의된 조례의 제정 목적은 영천성 수복의 숭고한 정신과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다.


 이 조례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시 영천과 주변지역 의병들이 창의의용군을 조직해 육지전투 최초로 승리한 영천성 수복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 2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식을 거행하거나 기념행사를 갖는 등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


 조례를 대표 발의한 최 의원은 “임진왜란 당시 3개월만에 인근 10개 지역의 의병을 모아 전국 최초로 육지전 대규모 승리를 거둔 영천성수복 전투는 당연히 계승 발전 시켜야 한다”며 “창의정용군을 잊지 않기 위해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비 또는 탑을 세워 기념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역에는 영천성복성전투 재조명 움직임이 영천지역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1592년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10만 대군을 동원해 시작된 임진왜란. 부산 앞바다를 침략해 영천읍성에 주둔한 왜병들은 밤낮으로 주민들을 살생하고 약탈했다. 이에 영천의병들은 권응수 장군을 필두로 수많은 의병들이 적과 싸운 희생으로 1592년 7월 27일 영천성 수복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를  이뤘다.


 이항복은 ‘백사별집’에서 “이순신의 명랑해전과 영천성 복성전투가 가장 통쾌한 승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영천읍성 복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육전에서 왜군에게 빼앗긴 대규모 읍성을 최초로 탈환한 전과로 많은 관군과 의병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기리 방영됐던 드라마 징비록에도, KBS 역사저널에도 영천성복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영천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런 시점에서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리한 영천복성전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복성기념일 제정’과 ‘기념탑 건립’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던게 사실이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국회 의원회관 2층 전시실에서 경북연합의병부대 창의정용군이라는 민간전투부대가 전국 최초로 육지전 대규모 승리를 거둔 ‘영천성수복전투‘에 관한 전시회를 가져 관심을 모았다.


영천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영천복성전투 재조명을 위해 ‘영천복성전투기념사업회 발족을 위한 대시민 서명운동’도 펼쳐지고 있다.


 한편 청주시는 임진왜란 당시 내륙에서 거둔 첫 승리로 기록됐다며 매년 청주성 탈환을 기념해 청주읍성 큰잔치를 열고 있다. 그러나 청주성 탈환은 영천복성전투보다 4일 후인 1592년 8월 1일로 기록되어 있다. 영천복성전투가 내륙에서 거둔 첫 승리인 만큼 의미를 더하고 있다.

 
 
 
↑↑ ▴최순례 시의원이 지난달 21일 열린 영천시의회 정례간담회에서 임진왜란 영천성수복전 기념일조례안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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