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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역(易)에 대하여(1)

우리민족의 내원(來原)과 점과의 관계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11.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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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재 진 한학자
 

우리나라가 소속되어 있는 동북아시아는 인류학적으로는 몽골계 인종과 중국계 인종(夏族)으로 대별되며, 문화적으로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로 구별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중국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大河(대하)인 황하연안에는 상술한 두개의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형성, 정착 되었다.


즉 황하의 하류지역에는 초원민족인 몽골족이 남하하여 유목을 주로 하면서 형성된 ‘龍山文化(용산문화)’집단이 있었고, 중류지역에는 중국민족 즉 夏族(하족)이 농경문화를 형성한 ‘仰邵文化(앙소문화)’ 집단이 그것이다.

 

 

 
 
 
 

전설적인 제왕인 삼황(복희·신농·황제)이후 唐(당)의 堯(요)는 虞(우)의 舜(순)에게, 그리고 舜(순)은 다시 9년 홍수를 다스린 夏(하)의 禹(우)에게 나라를 서로 禪讓(선양)하였다.


그리하여 기원전23세기 초엽 드디어 중국대륙에 하 왕조가 성립되어 풍족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중국문화의 始源(시원)을 이루었으니, 바로 이들을 앙소문화로 부른다.


그러나 하 왕조는 桀(걸)왕에 이르러 포학한 실정으로 말미암아 민심을 잃어 드디어 기원전17세기경 商(상)의 湯(탕)이 역성혁명으로 천하를 장악하지만, 다시 紂(주)에 이르러 다시 포학한 정치로 말미암아 기원전11세기 초엽 周(주)나라의 무왕에 의하여 멸망당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사실상 몽골족이 중국화 된 민족은 중원대륙을 상실한다.


周(주)나라로 중국을 통일한 무왕은 殷(은)나라 紂(주)왕의 서형인 微子(미자: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의 서형)에게 은나라 조상들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하여 분봉해 준 나라가 宋(송)나라이며, 紂(주)왕의 삼촌격인聖者(성자) 기자에게는 그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게 하였으니 이를 기자조선이라 부른다.


占(점)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이 만들어낸 것이라 보여진다.


전술한 두 가지의 문화를 살펴보면, 농경민족에게는 풍요로운 땅과 정착된 환경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알고자 하는 욕망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물과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족인 경우 내일의 일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10년 경 중국 하남성 언사현 일대에서 대량으로 발굴된 갑골들을 살펴보면, 殷族(은족)들이 얼마나 占(점)을 생활 화 하였는지를 알 수있다.


초원으로부터 남하하여, 중국대륙에 그 터전을 잡은 은족들은 결국 기원전12세기 초엽 그 광활한 대륙을 잃어버리고 일부는 황하의 남부와 淮(회). 徐(서) 지방에 잔류하였으나, 다시는 정치의 핵심으로 복귀하지 못한 2류의 인종으로 남게 되었고, 일부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남북만주 및 한반도의 주력으로 자리 매김한 은족의 후예들.그러하니 그들의 후손인 한국인들이 占(점)을 좋아하게 됨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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