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연재소설] 고깔을 쓴다(5)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07.01 17:1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 관 식 (사)한국문인협회 영천지부장
 

국내여행가를 꿈꾸며 떠난 남편의 메일은 외줄을 타는 느낌을 받았다. 이혼으로 후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원망이나 불신도 없었다. 이제는 관여해서는 안 될 경계선이 그어졌다. 이혼 이후는.

그리고 국내여행가라는 직업이 있을까하는 의구심,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직업이 아닌 취미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은 분명할 터. 남편을 떠올릴 때 간당간당한 마음으로 약간은 신경이 쓰였다. 연봉 팔천 오백을 받으며 k사 삼년 차 은행원으로 근무하지 않았는가. 무엇에 뒤틀렸는지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스트레스를 내세우며 지각과 결근을 반복하다가 사표를 던졌다. 그날, 남편은 비 맞은 생쥐 꼴로 엉금엉금 집으로 기어들어 왔다. 잔뜩 술에 취한 남편의 옷가지를 하나둘 벗겨주며 비명을 질렀다. 세상엔 너만 힘들고 너만 몰아세우지 않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왜 징징대는 거야. 나는 거칠게 팬티를 남겨두고 죄다 벗겨낸 허물을 세탁기 안에 던졌다. 물빨래든 드라이 클리닝든 상관없이. 팬티마저 벗겨버리고 싶었지만, 남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몸도 가누지 못할 팬티 속 남자는 과연 온전할까. 남편의 갈비뼈가 그날따라 더 앙상하게 보였다. 저 육신으로 아침에 눈을 뜨자 태엽감긴 장난감병정처럼 삐거덕거리며 출근길에 올랐던가. 저녁이 되면 저 육신의 휴식을 위해 집으로 찾아들어 말없이 나를 감싸 안았던가. 어느 땐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몸으로 구토를 하듯 나를 안고 버둥거리다가 떨어졌다. 남녀의 행위가 의무감 같은, 건조함을 내게 던져준 남편은 등을 보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저 남자를 믿고 이 길의 끝에 과연 설수 있을까. 늘 힘들어하고 불만스러워 비틀거리는데. 어디서부터 헝클어졌는지 알 수 없다. 나에 대한 불만으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불만의 싹을 키우고 있었던 걸까. 육 개월 남짓이지만 함께하면서 완전 엉망인 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남편도 나도 호칭 문제를 정하지 못해 여태껏 그냥 남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혼하기 전 나에 대한 호칭이 애매하게 기억 됐다. 여섯 살 적은 남편은 뚜렷하게 무슨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정말 필요로 해서 나를 부를 때면 가만히 다가와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그 느낌이 신선했다. 혹시나 놀랄까봐 발소리를 내며 다가온 남편의 인기척을 즐겼다. 컴퓨터 앞에서도 싱크대 앞에서도 창가에 턱을 괴고 있을 때도, 내 옆구리는 성감대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 남편의 두 번째 손가락이 옆구리에 닿자 삼십 볼트 전기에 감전 된 전류가 흘렀다. 일종의 무미건조해진 삶에 충격요법 같은 것이었다. 남편을 만나고 옆구리에 성감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니면 남편의 손가락으로 참 좋은 자리를 찍어주어 캐치에 적합한 자리매김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혼 초였다.

기억해보니 처음부터 삐꺽거리는 인연이었다. 말수가 적어 과묵하다고 생각한 남편은 참으로 내성적이었다. 그 나이에 맞지 않은 철지난 외투를 입고 있는 듯 했다. 모성애였을까. 남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남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 -계속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